일러스트= 안병현

양주, 목포 같은 중소도시에서 교향악단은 사치인가? 1990년대 들어 지방자치 시대가 개막하면서 우리나라에 교향악단이 대거 늘어났다. 수요나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음에도 지방 문화 사업 육성, 음악가 고용 촉진 등의 취지를 내걸고 유행처럼 교향악단을 창설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수도권 집중화와 고령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경기 양주시는 최근 시립예술단(교향악단·합창단)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예산 7억5000만원을 전액 삭감하며 단원 60명을 모두 해촉했다. 시의회는 부진한 사업 효과와 부족한 재정을 이유로 들었고, 단원들은 노조 결성에 따른 보복성 조처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해고는 2014년 목포시향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2년 연달아 예산이 삭감되며 단원 64명 중 27명을 정리해고했다가 8개월간의 파행 끝에 철회했다. 중소도시, 예산 삭감, 일방적 해고라는 구도가 흡사하다.

이는 중소도시 예술계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숫자로 확인하면 이해가 쉽다. 양주시가 지난해 예술단에 지원한 7억5000만원은 시 예산(이하 모두 본예산 기준)의 0.1%를 조금 웃돌고, 목포시가 2013년 교향악단에 지원한 13억 원은 예산의 0.23%에 다다른다. 반면 서울시는 교향악단, 예술단(합창단, 무용단 등 9개 예술단체로 구성)은 물론 대형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에 지원한 금액까지 합해도 지난해 기준 409억원으로 예산의 0.13%에 불과하다.

실제 도시 규모를 감안해서 따져보면 양주시와 목포시는 서울시보다 몇 배 많은 돈을 예술단에 지원해온 것이다. 인구, 경제력, 인프라의 차이를 감안할 때 중소도시가 예술단체를 운영하는 자체가 부담스러움을 시사한다. 고령화, 청년층 이탈에 따른 복지와 지원 정책이 절실한 지역이기에 더욱 그렇다. 지휘자와 단원 간의 갈등이나 노사 분쟁이 불거질 때면 지방의회가 기다렸다는 듯이 예산을 삭감하는 배경이다.

효율의 관점에서 접근해도 결론은 같다. 양주시 예술단의 1년 예산인 7억 5000만원이면 우리나라 최고의 예술 단체, 음악가를 초빙해도 대여섯 차례는 너끈히 공연을 치를 수 있다. 최근 양주시 예술단의 정기 공연은 연 2회 수준이었다. 시민음악회 등의 활동을 감안해도 효율을 문제시할 수 있다. 지역 음악가 고용 촉진과 예산의 효율적 집행이 상충하는 지점으로 다른 중소도시도 상황은 비슷하다.

레슨에 의존해 버텨온 클래식

양주시 예술단 단원들의 급여가 월 50만~60만원임이 공개되며 논란이 일었다. 터무니없이 적은 만큼 최저임금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그 돈은 1일 3시간, 주 2회 연습에 따른 수당으로 보통의 월급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반박도 있다. 목포시향 단원들도 마찬가지다. 2014년 당시 월 100만원대의 급여를 받았는데 하루 4시간 근무가 조건이었다. 월급으로는 적은 액수지만 시급으로는 최저임금 위반을 운운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예산이 넉넉지 않은 예술 단체의 상당수가 이런 변칙 고용 방식을 취하고 있다. 풀타임으로 고용하는 단체도 계약된 시간보다 적게 일하는 현실을 묵인해주는 경우가 많다. 단원들의 레슨 활동을 음성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다. 단원들이 아쉬운 급여에도 계약하는 건 레슨 때문. 소속 단체의 명함은 학생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술 단체는 적은 비용으로 단원을 고용해 예산을 절감하고, 단원은 레슨으로 수익을 올리는 구도가 장기간 지속됐다. 지금껏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지탱해온 건 레슨비라는 말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2014년 여름에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내홍을 취재해 기사화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에게 증언한 이는 "평균 연봉은 3000만원대지만 레슨으로 월 1000만원 이상의 고소득을 올리는 단원이 여럿 있다. 예전에는 공연 직전에도 오전, 오후 중 한 번만 연습했는데 지휘자가 바뀌며 두 번으로 늘었다. 그러자 일부 단원이 크게 반발했다. 근무 시간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고 늦어도 4시엔 퇴근할 수 있게 해줬음에도. 레슨 수입을 올릴 시간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모두가 이렇게 많이 버는 건 아니다. 레슨 수입에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수도권 집중화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중소도시에선 학생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급여는 박하고 처우도 불안한 상황에서 레슨 수입마저 요원해지니 그들로선 생존의 기로에 몰릴 수밖에 없다. 지역 간 경제력 격차가 다방면에서 작용하는 셈이다.

게다가 근래엔 탈세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대두하고 있다. 현금 거래로 이뤄지는 레슨 수입을 세무 당국에 신고하지 않는 걸 문제시하는 것이다. 몇 년 전엔 일부 예술 단체의 근태를 놓고 국정감사 직전까지 간 바 있다. 일찍 퇴근해서 학생을 가르치고 소득을 신고하지 않는 행태를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의존해온 예술계의 현황을 감안할 때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돼 일단 덮어뒀다고 한다.

음대 교육도 변화해야

음대 통폐합 흐름이 거세다. 취업률이 늘 꼴찌를 맴돌기 때문이다. 전공인 실기를 살려 취업할 수 있는 단체는 교향악단, 합창단 등이 전부인데 선발 인원은 매우 적다. 중소도시 예술단 말석에 앉는 단원조차 대부분 명문대 출신 유학파다. 수억원 들여 공부해도 월급 200만원 받기가 어렵다 보니 '음대 졸업생 대부분은 레슨 선생이 된다'며 자조한다.

이에 교육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피아니스트인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전공 교육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분야의 학문과 인재를 접하며 협업과 공동체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음대 출신도 다른 분야에서 환영받으며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음악 전공자는 작품을 완성하는 끈기, 세심한 것을 놓치지 않는 완벽주의,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 멀티태스킹 능력 등의 강점을 갖는데 이는 일반 직장에서도 얼마든지 발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조 교수는 음악 내적인 교육도 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솔리스트 양성에 집중하는 커리큘럼은 현재의 시대정신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테크닉, 해석력뿐 아니라 자신의 음악 세계를 스스로 구현할 수 있는 기획력과 창작력을 키워야 한다"며 "SNS, 유튜브, 아프리카TV 같은 매체를 활용해 자신의 예술 역량을 스스로 발현할 기회를 찾아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능동적으로 시장을 개척하며 입지를 다지는 태도가 요구되는 시대임을 짚은 것이다.

레슨비에 의존해 음악가가 생계를 유지하고 예술 단체가 굴러가는 시대는 수명을 다했다는 지적이 많다. 수요(관객)가 공급(전공자)을 밑도는 음악계가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화를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각종 복지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세지는 현황에선 더욱 그렇다. 음악가들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으니 예술도 지원하라'고 외치지만 현실에서는 '죽을 것 같으니 일단 빵이라도 좀 달라'는 목소리가 더 강하다.

교육 커리큘럼 개혁이 절실하다. 그 목표는 기성세대의 밥벌이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자립이 되어야 한다. 현재 음악계만 유난히 고립돼 있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마땅한 일자리가 부족한 현황에서 다른 분야마저 음악 전공자라면 색안경을 쓰고 바라본다. 국문학 전공자가 정유회사에서 일하는 게 부자연스럽지 않듯, 음악 전공자 또한 금융회사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도제식 실기 교육에 집착할 이유가 있을까. 선생에게 레슨비만 바치고 자신은 실업자가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