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도 '휴먼스케일'이 적용된다면 이 도시만큼 최적화된 곳이 있을까.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구도심을 둥글게 두른 링 거리(Ringstrasse)를 따라 거닐다 생각에 잠겼다. 너무 작아 답답하지도, 너무 커 위압감 들지도 않는 적당한 크기의 도심. 2010~2018년 9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머서 발표)에 걸맞은 대중교통 인프라(전체 이동 수단 39%가 대중교통) 덕에 교통 체증도 좀처럼 없다. 대신 다른 체증 유발범(?)이 있다. 모차르트, 베토벤, 요한 슈트라우스, 클림트…. 도시 곳곳 촘촘히 박혀 있는 예술가의 흔적이 수시로 발길을 붙잡는다.
음악의 도시가 지겹다? 미술을 보라
빈 관광청에 따르면 지난해 빈을 방문한 한국 관광객 수는 12만3500여 명, 평균 숙박일수는 1.8일. 성지순례하듯 오는 클래식 애호가 비율이 높다. '음악 도시' 이미지가 강하지만 '시대'를 씨줄, '예술 장르'를 날줄 삼아 교직해 보면 빈을 즐기는 법은 음악 외에도 무궁무진하다.
요즘 빈을 간다면 시곗바늘을 100년 전으로 돌려 미술과 건축에 테마를 맞춰 보길 권한다. '세기말 빈'이란 말이 고유명사처럼 쓰일 만큼 1900년대 전후는 빈의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이끌었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시민 세력에 흔들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마침 작년은 19세기 말 빈을 달궜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와 에곤 실레(1890~1918), 건축가 오토 바그너(1841~1918), 디자이너 콜로만 모저(1868~1918)가 동시에 서거 100주년을 맞는 해였다. '빈 모더니즘 100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클림트를 알면 빈이 보인다
모차르트를 빼고 빈의 음악을 이해 못 하듯 클림트를 빼고 빈의 미술을 논할 수 없다. 빈 공항에서 여행객을 환영하는 주인공도 벽면에 크게 붙은 클림트의 '키스' 이미지다.
뻔한 여행을 거부하고 '세기말 빈 여행'의 궤적을 밟겠다면 클림트의 성전과 다름없는 '제체시온(Secession·빈 분리파)' 전시관을 출발점으로 삼아 보자. 1897년 클림트를 좌장으로 젊은 예술가들이 전통에서 '분리'해 새로운 예술을 지향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예술 사조가 제체시온이다.
제체시온 전시관은 링 거리 남쪽에 있다. 황금 장식을 한 구 형태의 지붕 때문에 '양배추 머리'로도 불린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시대를 뛰어넘어 절대 명제가 된 분리파 슬로건이 입구에 걸려 있다. 이곳 지하 전시장에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체(Frieze)'가 있다.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을 악장별로 해석해 세 개의 벽에 걸쳐 총 길이 34m로 제작된 벽화. 이 작품 하나 보러 오는 클림트 진성 팬들이 꽤 된다. 지하 무덤에 들어가 중세 성화 감상하듯 클림트를 만나는 경험이 이채롭다.
클림트 그림을 한꺼번에 보려면 '키스' '유디트' 등 대표작 24점을 소장한 벨베데레 궁전으로 가야 한다. 벨베데레의 '키스'는 루브르의 '모나리자' 같은 존재. 매년 100만여명이 키스를 보러 온다. 머그컵부터 우산까지 아트 상품을 점령한 그림, 너무 식상하지는 않을까. '키스' 앞에 서니 그런 생각이 싹 날아간다. "끌어안은 남녀 말고 배경에 작게 찍힌 황금색 점들을 보세요." 큐레이터가 조언한다. 그제야 조명에 반사돼 반짝이는 황금(진짜 금이다) 점이 보인다. 누런 줄로만 알았던 배경이 무수한 별로 수놓인 우주 공간 같다. 그 우주의 중심에 영원한 사랑이 박제돼 있다. 사진으로는 볼 수 없는 원화(原畵)의 참맛.
숱한 염문을 뿌렸으나 평생 결혼은 하지 않았던 클림트의 곁을 일생 지켰던 이가 있다. 연인 에밀리 플뢰게. 클림트는 그녀의 초상화를 딱 한 점만 그렸다. 이 그림이 빈 미술관 카를스플라츠에 있다. 레오폴트미술관에 있는 말년작 '죽음과 삶'은 클림트가 키스와 함께 가장 공들인 작품. 초기에 그린 부르크 극장과 빈 미술사박물관 천장화 관람은 사뭇 다른 클림트를 만나는 방법이다.
100년 전의 셀카, 실레의 자화상
실레는 클림트가 발탁해 후원한 인물. '클림트 장학생'인 셈이다. 1907년 작업실에서 열일곱 살 실레와 마흔다섯의 클림트가 만났다. 실레가 드로잉을 서로 바꾸자고 했을 때 클림트가 말했다. "왜 내 것과 바꾸려고 하지? 자네 그림이 훨씬 나은데 말이야."
실레 그림을 가장 많이 소장한 레오폴트미술관으로 가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발리의 초상' '추기경과 수녀' 등 대표작을 마주한다. 클림트의 말은 진심이었다. 뒤틀린 몸, 살가죽을 도려낸 듯한 얼굴, 기괴하게 꺾은 손…. 캔버스 속 그로테스크한 인물들이 마음의 폐부를 푹 찌르고 들어온다.
클림트와 실레는 닮은 듯 다른 꼴. 애욕(愛慾)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점은 비슷하나 클림트는 "그림의 소재로 나 자신은 관심 없다"며 자화상은 한 점도 안 그렸다. 반면 실레는 "나는 나를 위해 존재한다"며 끊임없이 '셀카' 찍듯 자화상을 그렸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실레가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한 1906년 무렵 히틀러도 이 학교에 응시했으나 떨어졌다. 히틀러는 그 콤플렉스 때문인지 실레와 클림트가 속한 빈 분리파 미술을 혐오해 퇴폐미술로 규정했다. 만약 히틀러가 실레와 동창이 됐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빈을 설계한 건축가, 오토 바그너
세기말 빈의 소프트웨어를 바꾼 이가 클림트와 실레라면 하드웨어를 뜯어고친 이는 건축가 오토 바그너. 도시 계획가로 철도 프로젝트까지 하면서 실핏줄처럼 이어진 빈의 교통체계를 만들었다.
도심 곳곳에 있는 바그너의 작품을 찾는 것도 색다른 빈 즐기기. 정수는 링 거리 주변에 있는 오스트리아 우체국 저축은행이다. '실용적이지 않은 것은 절대 아름다울 수 없다.' 1층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적힌 바그너의 명언처럼 기능을 우선해 최대한 장식을 배제한 건물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세트장처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황금 꽃 장식이 인상적인 카를스플라츠 역사(驛舍), 나슈마르크트 시장 근처 집합 주택 '마욜리카 하우스'와 '메달리온 하우스'도 바그너의 작품이다.
여행정보
‘비엔나 시티카드’를 꼭 챙길 것. 해당 시간 안에 대중교통 무제한 이용 가능. 미술관·콘서트 할인 혜택. 24·48·72시간용 각각 17·25·29 유로. 온라인에서 사전 구입 가능. 아는 만큼 보인다. 워밍업에 좋은 책. ‘세기말 빈’ ‘빈이 사랑한 천재들’ ‘클림트-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뭉크·실레·클림트’ 등. 클림트 관련 영화 ‘우먼 인 골드’와 ‘에곤 실레’도 예열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