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일병 조겸수의 묘, 육군 병장 이봉실의 묘, 육군 이병 김창갑의 묘….
계급과 이름이 적힌 비석들이 오와 열을 맞춘 채 서 있었다. 지난 12일 국립서울현충원 제43묘역. 6·25전쟁 때 낙동강 방어선에서 전사한 유공자들이 겨울 볕을 쬐고 있었다. 평일이라 참배객은 뜸했다. 까옥까옥 까마귀가 울었다.
1950년 7월 말, 북한군은 영덕~안동~상주~진주를 잇는 선까지 밀고 내려왔다. 8월 초순부터 9월 중순까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공방전은 북한군의 패배로 끝났다. 전세를 바꾸는 발판을 만든 그 방어선에서 죽음으로 나라를 지킨 영령들이 43묘역에 모여 있다. 전사 날짜와 장소가 파악되지 않아 뒤가 텅 비어 있는 비석도 심심찮게 보였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국가유공자 자격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위원장 지은희)는 최근 "김원봉(1898~1958)처럼 남에서도 북에서도 사상이나 정치적 이유로 독립운동 공적을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독립운동가들을 유공자로 적극 서훈해야 한다"며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하향된 사례는 모두 조사해 재조정하라"고 권고했다. 국가보훈처는 또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 '20년 미만 복무 군인'을 제외하고 '공권력에 의한 집단 희생자'와 '민주화 운동 사망자'를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이 일었다.
역사를 왜 선택적으로 기억하나
"이제는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
2015년 8월 15일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이다. 게시자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1930년대 독립군을 그린 영화 '암살'은 바로 그날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배우 조승우가 연기한 의열단장 김원봉은 김구보다 높은 현상금이 걸릴 만큼 치열한 항일 무장 투쟁을 했다. 영화 '밀정'에서 이병헌이 맡은 인물(정채산)로도 기억된다.
김원봉은 좌우 합작 운동을 이끌던 여운형이 암살당한 1947년에 조선공산당 창당 주역 박헌영 등과 함께 월북했다.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해 국가검열상에 임명됐고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6·25 남침 때도 지도부였다. 자세한 내막은 불투명하지만 김일성은 1958년 김원봉을 숙청했다.
김원봉을 거명한 보훈혁신위의 권고는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다. 재향군인회를 비롯한 보훈단체와 야당은 일제히 반발했다. 아무리 독립운동을 했어도 북한 독재 정권 수립에 기여한 인물은 유공자가 될 수 없으며, 6·25 때 흘린 피의 가치를 보훈처가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은 '보훈 농단'이라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남침으로 300만명이 희생됐는데 북한 편에 선 사람을 유공자라 할 수 있느냐"며 "탈원전보다 중요한 국가 정체성 문제를 여론 수렴도, 공론화도 없이 밀어붙인다"고 비판했다.
보훈혁신위 위원인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1945년 8월 15일이라는 시점이 독립운동가에 대한 최종적 평가 기준이어야 한다는 게 우리가 세운 대원칙"이라고 말했다. 광복 이후의 행적은 보지 말자는 얘기다. 오 사무국장은 "김원봉은 북한에서도 버림받은 사람이니 재평가해야 한다"며 "현재 독립유공자 선정 기준 중 '사회주의 활동 경력이 있더라도 북한 정권 수립에 직접 기여하지 않았다면 포상할 수 있다'는 조항도 '6·25전쟁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면' 정도로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역사 세탁'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사학자인 정경희 영산대 교수는 "대한민국은 항일운동만이 아니라 광복 이후 공산주의와의 투쟁으로 세운 나라"라며 "김원봉은 사실상 북한 정권 2인자였고 반(反)대한민국의 선봉에 섰는데 보훈처가 어떻게 유공자로 기릴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누가 국가유공자인가
국가유공자는 나라를 위해 공헌하거나 희생한 사람이다. 크게는 '독립' '호국' '민주'로 분류할 수 있다. 독립운동을 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참전유공자와 전몰군경과 순직·공상(公傷) 공무원, 4·19와 5·18 민주화 유공자 등이다. 보훈처에 따르면 국가유공자는 작년 말까지 모두 84만7078명이다.
선정 기준이 확고하지 않다는 게 문제로 꼽힌다. 손혜원 의원의 부친(고 손용우씨)이 지난해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데 대해서도 의혹이 불거졌다. 독립운동 전력이 있었지만 광복 후 조선공산당 가입, 입북과 남파 후 지하공작, 보안법 위반 구류 등 좌익 활동을 해 과거에 6번이나 심사에 떨어진 사람이다. 보훈처는 "사회주의 경력에 대한 심사 기준이 완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손 의원이 작년 2월 피우진 보훈처장을 따로 만난 뒤 심사 기준을 수정(4월)했고, 공식 발표(6월) 전에 재심을 전화로 신청해 '6전 7기'로 첫 수혜자가 된 과정은 석연치 않다.
보훈학회장을 지낸 유영옥 경기대 명예교수는 "보훈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52명이 '광복 이후 행적 불분명'으로 탈락했는데 손용우씨는 왜 예외인가? '빽'이 있으니 통과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심사 평가를 들어가 보면 비전문가들이 객관적 검증도 없이 자기가 아는 사람을 유공자로 만들려고 싸운다."
친일 논란이 있는 좌파 정치가 여운형은 200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가 2008년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으로 격상됐다. 2016년에는 김일성의 삼촌 김형권과 외삼촌인 강진석이 독립유공자로 수훈받은 사실이 알려져 국회에서 논란이 있었다. 이에 대해 보훈처는 "독립운동을 한 김형권·강진석은 광복 전에 별세했기 때문에 유공자로 인정된다"고 해명했다.
한 번 준 것을 취소하기는 어렵다. 경찰 7명이 사망한 1989년 '부산 동의대 사건'의 경우 학생들은 2002년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돼 보상을 받았고 희생된 경찰들은 역적 취급을 당했다. 24년 만인 2013년에야 명예가 회복돼 국가가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친일이 부적격이듯이 친북도 부적격"
우리나라 국립묘지는 6·25전쟁의 전몰장병 묘지로 시작됐다. 반공이 바탕에 깔려 있다. 현재 국립묘지는 서울·대전 현충원과 광주 5·18 민주묘지 등 모두 10곳이다. 전쟁과 민주화를 겪으며 정치적 긴장이 감도는 두 부류의 국립묘지가 존재하는 셈이다.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는 남북전쟁(1861~1865)에서 승리한 북군 전몰 장병들을 위한 묘지로 출발했다. 19세기 말에 미국이 스페인과 전쟁을 끝내고 나서야 남군 전몰 장병의 유해도 이곳에 안장하게 됐다. 하나로 통합된 미국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논란을 피할 수 있었다. 장군과 사병 묘역을 구분하지 않고, 같은 면적(1.3평)에 묻힌다.
우리 국립묘지는 사정이 다르다. 남북한은 군사적으로 대치 중이다. 국립서울현충원 홈페이지에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적혀 있다. 독립운동도 6·25 전쟁도 민주화도 함께 기억하겠다는 뜻이다. 유영옥 교수는 "북한 정권에 참여한 좌파 독립운동가를 유공자로 포용하는 것은 남북한이 완전한 평화통일을 이룬 다음에 따져볼 일"이라며 "현재는 친일이 부적격이듯이 친북도 부적격"이라고 말했다. 김형준 교수는 "항일운동은 김일성도 했다. 결국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라며 "이번 논란으로 정권이 입맛에 맞게 역사를 선별적으로 기억하려 하는 몰역사성이 드러났다"고 했다.
서울에서 경찰관으로 사상범을 감시하는 일을 하다 6·25를 맞고 나중에 국가유공자가 된 김재훈(92)씨는 "공산주의자도 국가유공자로 지정한다니 화가 난다"며 되물었다. "난 그때 무슨 일을 한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