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간 법원에서 일하다 퇴임하는 법원장이 법원 전용 온라인망에 글을 남기자 20년 후배 판사가 '궤변' '언어도단'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공격하는 일이 최근 있었다. 판사들 사이에선 "법원이 둘로 쪼개져 이젠 예의도 사라진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지난 13일 퇴임한 최인석(62) 전 울산지방법원장은 퇴임 직전인 지난 8일 '살아서 역사의 증인이 돼라'는 제목의 글을 법관 전용 온라인망에 올렸다. 그는 '작금의 시대 상황에 대해 후련함과 통쾌함을 느끼는 분도 계실 것이고, 울분과 치욕과 수모를 느끼는 분도 계실 것'이라며 '후자(後者) 쪽인 여러분, 이 치욕과 수모를 참고 견뎌서 역사의 증인이 돼라'고 썼다.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를 지지하는 쪽과 비판하는 쪽으로 갈라진 법원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됐다.

여기에 차성안(42) 판사가 댓글을 달았다. 그는 '(저는) 후련하지도 통쾌하지도 않으며 (일부 판사들의) 거짓과 은폐로 울분이 많이 쌓였습니다'라고 썼다. 차 판사는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다. 이에 최 전 법원장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후 한 부장판사가 '(최 전 법원장은) 법원에서도, 인생에서도 선배이시다. 떠나시는 소회도 못 밝히나'라고 썼다. 그러자 차 판사는 다시 댓글을 달았다. '(최 전 법원장이) 사법 농단 사태에 대해 성찰과 반성의 말씀은 없으시고…. 그게 떠나는 분이 하실 말씀인가. 그리고 선배 판사, 후배 판사라는 말도 이참에 버리면 좋겠다. 초·중·고, 대학도 아니고 모두가 동등해야 할 법원에서'라고 썼다.

오현석(42) 판사도 댓글을 올렸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인 그는 2017년 '재판이 곧 정치'라는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려 논란을 부른 바 있다. 그는 '최인석 판사님. 판사 신분을 탐하고 월급을 챙기면서 일신의 안녕을 구가하는 일을 가리켜 살아남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수긍할 수 없는 궤변이요, 죽은 것을 살았다고 하는 언어도단'이라고 썼다. '최인석 판사님이 설마 판사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감행한, 이 시각에도 뻔뻔스럽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후안무치한 모씨를 가리켜 법원에 남아 있으라고 했겠느냐'고도 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판사들을 '모(某)씨'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한 부장판사는 "퇴임하는 법원장을 그런 식으로 공격하는 것을 보면서 보는 내내 기가 막혔다"고 했다. 차 판사는 본지 통화에서 "최 법원장님의 글에 이견을 밝힌 것일 뿐 공격하는 취지는 전혀 아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