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베이조스, 피터 틸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이조스와 온라인 결제 수단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 IT·인터넷 분야에서 각각 1230억달러(약 140조원)와 25억달러(약 2조8000억원)를 번 두 억만장자는 불륜(베이조스)과 동성애자(틸)라는 사실이 폭로 전문 매체에 공개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 최대 타블로이드 잡지인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지난달 베이조스가 전 폭스뉴스 앵커이자 할리우드 거물 패트릭 화이트셀의 아내인 로런 산체스와 주고받은 외설적인 문자 메시지를 공개하며 두 사람의 불륜 사실을 폭로했다. 틸은 1998년 일론 머스크 등과 페이팔을 창업하고, 이후 페이스북에 투자하는 등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가이지만 사생활은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그런 틸에 대해 인터넷 매체 '고커(Gawker)'가 2007년 "피터 틸은 완전한 동성애자(gay)"라고 폭로했다.

두 사람의 대응 방식은 완전 딴판이었다. 베이조스는 즉각적인 전면전을 선택했다. 그는 지난 1월 9일 인콰이어러 보도가 나오기 불과 몇 시간 전 트위터를 통해 매켄지 베이조스와의 이혼을 전격 발표했다. 지난 7일에는 인콰이어러의 모기업 AMI 데이비드 페커 회장 측으로부터 "낯 뜨거운 사진들을 더 공개하겠다"는 내용의 협박 이메일을 받았다고 또 공개했다. 불리한 사안을 공격자보다 앞질러 자신의 뜻대로 규정하는 위기 관리 수칙을 그대로 따랐다. 워싱턴포스트(WP)는 9일 "베이조스의 글은 마치 전 세계를 배심원 삼아 호소하는 변호사의 모두(冒頭) 진술 같았다"고 전했다.

베이조스는 보도의 배후에 대한 의혹도 제기했다. AMI 페커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20년 절친이고, 트럼프는 베이조스가 사주(社主)인 WP를 눈엣가시처럼 여긴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이후 미 언론에서는 '트럼프가 관련된 정치적 배후설'이 계속 거론되고 있다. '사우디 배후설'도 나왔다. 사우디에 의해 살해된 비판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WP에 칼럼을 기고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AMI 측이 과거 사우디 정부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려고 접촉한 사실도 드러났다. 베이조스는 사건의 논점을 자신의 불륜에서 보도의 배후 의혹으로 돌리는 데 사실상 성공한 것이다.

틸은 베이조스와 정반대였다. 분노를 참으며 조용히 기회를 노렸다. 동성애 폭로 보도 이후 5년을 기다린 끝에 기회가 왔다. 2012년 자신의 사생활을 폭로한 고커가 유명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의 섹스 동영상을 공개해 소송에 휩싸이자 반격에 나섰다. 틸은 호건의 변호인단에 1000만달러(약 115억원)라는 거액을 지원해, 결국 고커로부터 1억4000만달러(약 1600억원) 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그 여파로 고커는 2016년 폐업했다.

두 사람의 대응 방식에 대한 미 주류 언론의 평가엔 차이가 있다. 자신의 성(性) 정체성을 폭로한 매체를 폐업시킨 틸은 "갑부면 누가 뉴스 소재가 될지도 고를 수 있다는 것이냐"는 비난을 샀다. WP도 지난달 "억만장자가 막대한 돈으로 사적 복수를 하고 한 매체를 없앤 것에 대한 메스꺼움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반면 베이조스에 대해서는 호평이 많다. 뉴욕타임스(NYT)는 "베이조스는 페커 같은 깡패에게 맞서는 '영웅'이 됐고, 망신이 승리로 바뀌었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