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4년만에 자산규모 50조원 육박 中 최대 민간투자기업 CMIG 자금난
과도한 차입의존 부채 위기 VS 창립자 정치리스크...엇갈린 시각 존재
‘중국판 민간 국부펀드’, ‘중국판 모건스탠리’로 불리는 금융회사가 있다. 중국 민성(民生)투자그룹(CMIG)이다. 이 회사가 채권 원금 30억위안(약 4890억원)을 만기일인 1월 29일 갚지 못해 2월 1일로 상환시일을 늦췄지만 지금까지도 이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하이 금융법원은 1일 CMIG의 부동산투자회사인 중민자옌(中民嘉业)투자에 대한 보유지분(67.26%)의 92%를 3년간 동결하는 조치를 취했다.
CMIG의 채권 디폴트는 또 다른 중국 민영기업의 채무 불이행 사례에 머물지 않는다. 2014년 등록 자본금 500억위안(약 8조 1500억원) 규모로 출범한 CMIG는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직접 설립 비준에 서명한 게 알려지면서 중국 자본을 대표하는 민영 투자기업으로 주목을 받았었다.
하나은행과 중국에서 2015년 합작 리스회사를 설립 운영해 우리와도 인연이 있다. 하나은행의 김승유 전 회장은 CMIG의 수석고문이자 16명으로 구성된 글로벌 전문가 자문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자산규모가 3000억위안(약 49조원)에 이르는 기업이 30억위안을 갚지 못해 법원으로부터 일부 자산 동결 조치를 당한 것을 두고, 중국에서는 ‘기술적 디폴트’, ‘실질적 디폴트’ 등 여러 말이 나오지만 명쾌한 설명은 없다.
CMIG에 투자한 중국 최대 가전유통업체 쑤닝(蘇寧)등 민간주주 60여개사의 자산 합계가 1조위안(약 163조원)이 넘는다는 중국 언론의 보도도 있다.
특히 CMIG 설립을 주도한 초대 회장 둥원뱌오(董文标)는 2015년 한때 해외도피설이 돌기도 했던 인물이다. 둥원뱌오는 중국 1호 민영은행인 민성(民生)은행 회장을 지낸 인물로 민성은행 행장 마오샤오펑(毛曉峰)은 ‘부인 구락부(사모님 클럽)’ 운영 등 부패혐의로 2015년 낙마했다.
둥원뱌오는 작년 10월 CMIG의 회장에서 물러나고 이 기업의 글로벌 전문가 자문위원회 주석을 맡고 있다. 11일엔 태국 화교 재벌 정다그룹의 중국인 부회장 양샤오핑(杨小平)이 CMIG에 신설된 ‘이사회 연석 회장’을 겸직하게 돼 둥원뱌오 후임인 리화이전(李怀珍) 회장과 함께 CMIG를 이끌게 됐다.
정다그룹은 일본 이토추상사와 합작한 정다광밍(正大光明)을 통해 CMIG에 10억위안(약 1630억원)을 투자해 지분 10%를 확보한 창립멤버다. 양샤오핑은 정다광밍의 최고경영자(CEO)도 겸하고 있다.
CMIG의 채권 디폴트는 과도한 차입이 중국 경기 하강에 위기로 불거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정치리스크로 바라보는 시각도 나온다. 이번 디폴트 사태가 △중국 금융위기를 알리는 ‘탄광속 카나리아’가 될지 △정치리스크를 부각시키는 또 다른 사례가 될지 △단순한 해프닝으로 마무리될지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카나리아는 일산화탄소에 민감해 먼저 쓰러져 위험을 광부들에게 알려준다. 역경과 위험을 미리 예고하는 사건 등을 ‘탄광 속 카나리아’로 비유하는 이유다.
♢ 중국 금융위기 카나리아 될까
베이징의 금융소식통은 "이번에 문제가된 CMIG의 채권은 특정인들을 대상으로 발행한 사모사채"라며 "중국 당국의 까다로운 규제 탓에 해외에 있는 자금을 갖고 오지 못해 일시적으로 생긴 중국 특색의 기술적 디폴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CMIG는 상하이증권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는 3개의 채권거래 중단을 신청했다고 12일 공시했다. 2017년 발행 회사채 가격이 전날 30% 이상 떨어지면서 역대 최저치인 35.51위안까지 밀리자 일시 거래가 중단되는 등 최근 CMIG 채권 거래가 큰 변동성을 보인 데 따른 것이다. 이 채권은 최근 1개월새 4차례 장중 거래가 중단되면서 가격 하락폭을 50% 이상 키웠다.
CMIG에 따르면 작년 6월말 기준 부채비율은 74.95%로 높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중국 경제 잡지 차이징(財經)에 따르면 CMIG는 작년 1~9월 3000억위안의 투자자산으로부터 16억위안(약 2608억원)의 이익을 올렸다. 2017년 같은 기간에 비해 60% 줄어든 수준이다. 중국 증시 부진과 경기둔화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다. 반면 CMIG가 매년 지불해야 하는 채권 이자는 40억위안(약 6520억원)을 넘었다. 이자를 갚기 위해 자금을 빌려야 하는 악순환 구조인 것이다.
이번 채권 디폴트가 과도한 차입이 만든 금융리스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CMIG는 태양광 등 신에너지, 의료건강, 항공, 금융부동산, 투자은행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면서 2017년까지 3년만에 자산규모를 3061억위안(약 50조원)으로 불렸다. 2014년 8월 출범 당시 59개 민간주주가 500억위안을 출자하기로 했고, 이후 주주는 63개사로 늘었다. 하지만 실제 납입된 자본금은 420억위안(약 6조 8460억원) 수준이다. 궈신바오타이(国信保泰)창업투자가 16.91% 지분만큼 출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한푼도 내지 않았다고 차이징은 전했다. CMIG는 올해 처음으로 주주 배당도 실시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상하이신스지신용평가투자서비스는 작년 10월 내놓은 CMIG 보고서에서 투자 규모가 비교적 크고 국내외 여러 업종에 걸쳐 있는 데다 회수기간이 비교적 길어서 부동산과 태양광 등 관련 정책과 지역 경제 환경 및 국제경제환경 변동 등의 영향을 쉽게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비교적 많은 부채로 지속적인 자금수요가 존재한다고도 지적했다.
중국 당국이 장기 리스크를 차단하기 위해 그림자금융을 규제하는 등 디레버리징(부채축소) 정책을 편 것도 CMIG의 자금난을 부추겼다. 은행의 재무제표에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금융은 중국에서 2011년부터 5년간 매년 40%씩 평균 성장하면서 2017년 GDP의 70% 수준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 비중이 60%로 떨어졌고 이는 중국 경제가 지난해 28년만에 가장 낮은 6.6%의 성장률을 기록한 배경이 됐다.
특히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이 겹치면서 경기하강 압력이 커진 중국이 부채축소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지만 그동안 부채에 기대 사업을 확대해 온 기업들의 자금난 해소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CMIG가 흔들리는 건 중국 경제의 체질 전환이 경기하강 리스크에 직면했다는 분석으로도 이어진다. CMIG는 웹사이트에 ‘민영자본 투자를 이끌어 경제전환 업그레이드 추진’을 비전으로 적시했다. CMIG가 2014년 8월 정식 출범했을 때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글로벌 500대 기업에 진입할 수 있는 국제화된 대형 투자그룹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둥원뱌오 당시 회장의 말을 전했다. 당시 CMIG가 국유기업의 혼합소유제 개혁 참여 등 과잉공급 업종의 구조조정 특명을 받은 민간투자기업이라는 얘기도 나왔었다.
♢ 정치리스크 또 부각되나
CMIG 채권 디폴트를 정치적 시각으로 보는 배경엔 둥원뱌오 전 회장의 행보가 있다. 민성은행 행장으로 있다가 부인구락부 운영 등의 부패혐의로 낙마한 인물은 마오샤오펑이다. 부패혐의로 수감중인 링지화(令計劃) 전 통일전선공작부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그를 두고 2015년 당시 차이징은 마오 전 행장이 민성은행에 ‘부인 구락부’라는 유령 조직을 만들어 링 전 통일전선공작부장의 부인 구리핑(谷麗萍) 등 당⋅정 고위급의 부인과 자녀 10여명에게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직책을 주고 고액 월급을 챙겨줬다고 전했다.
마오샤오펑이 민성은행에 합류한 2002년은 이 은행 창립멤버인 둥원뱌오가 행장 겸 당서기를 맡던 때다. 둥원뱌오는 CMIG 회장으로 옮긴 2014년까지 8년간 민성은행 회장을 맡아 마오샤오펑의 부패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마오샤오펑 낙마 소식 때 둥원뱌오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중국 안팎에서 해외도피설이 증폭된 배경이다.
특히 2014년 이후 민성은행 지분을 늘리면서 최대주주로 부상했던 안방(安邦)보험은 창업주인 우샤오후이(吴小晖)가 지난해 불법자금 모집 등의 혐의로 경영권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들어가면서 국유화된 상태다. 덩샤오핑(鄧小平) 손녀 사위로 알려졌던 우샤오후이는 태자당(太子黨·혁명원로 자제)과의 인맥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2004년 설립한 안방보험을 중국에서 자본금 기준 1위, 자산 기준 3위 보험사로 키워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