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 추진 기업에 최소 2년간 규제를 면제해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첫 적용 대상으로 11일 현대자동차가 신청한 도심 수소차 충전소 사업 등 4건이 선정됐다. 지난달 도입된 규제 샌드박스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규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제한된 범위 안에서 일단 사업을 시작하도록 임시 허가를 내준 뒤 관련 규제를 개선·정비하는 '선(先)사업 후(後)정비' 제도다. 말로만 규제혁신을 한다고 지적받아온 문재인 정부가 출범 후 처음으로 실효성 있는 조치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현대차가 세계 최고 성능의 수소차를 만들어 수출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는 충전소가 규제에 막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11곳뿐이었다. 파리에선 에펠탑 바로 옆에 세울 수 있지만 국내에선 도심 충전소가 불가능했다. 이 외에 비(非)병원의 유전자 검사 사업과 버스 디지털 광고, 일반 콘센트를 활용한 전기차·킥보드 충전 사업도 함께 통과돼 일단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과거에 만들어진 낡은 규제가 신산업의 출현을 막는 일이 지금 우리 경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항공법 때문에 상업용 드론이 제대로 뜨지 못하고, 도로교통법 때문에 자율 주행차의 도로 주행이 제한받고 있다. 전 세계인들이 이용하는 차량 공유 서비스가 한국에선 싹조차 트지 못했고, 국제 시장에서 호평받은 원격진료 장비가 허가를 못 받아 창고에 처박혀 있다.
성공한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중 57곳이 한국이라면 아예 창업이 불가능했거나 조건부 영업만 가능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모든 나라가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데 우리는 온갖 과도한 규제가 신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과감한 규제혁신 없이는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낼 수 없고 경제 활력도 살아날 수 없다.
문제는 규제 완화로 손해를 보는 기득권층의 반발이다. 전 세계인이 이용하는 차량 공유 서비스가 한국에서만 안 되는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원칙 없이 이들의 눈치를 보면 규제 샌드박스 역시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