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역 한 대학 시간강사 A씨는 최근 대학으로부터 "다음 학기에도 강의를 맡기고 싶은데, 재직증명서를 떼올 수 있느냐"는 얘길 들었다. 기존처럼 시간강사로 채용하긴 어렵고, 재직증명서를 떼오면 겸임교수로 전환해 강의를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A씨는 고민하다 학원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부탁해 재직증명서를 발급받아 대학에 제출했고, 얼마 전 신학기 강의를 배정받았다.

다른 대학 시간강사 B씨도 최근 학과로부터 "(다른 회사나 기관에서) 4대 보험을 들어오면 겸임교수로 전환해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B씨는 가짜 증명서를 만드는 게 내키지 않아 거절했다. 그는 아무런 강의를 배정받지 못했다.

◇강사법 시행 앞두고 '편법 채용'

오는 8월 시간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들이 시간강사 수를 줄이기 위해 각종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 시간강사법이 시행되면 대학은 시간강사에게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 등을 줘야 하고, 임용을 사실상 3년간 보장해야 한다. 법이 시행되면 전국 7만6000여 명 시간강사 인건비로 최소 2000억원이 더 필요하다. 이런 비용이 부담스러운 대학들이 편법으로 시간강사를 겸임교수나 초빙교수로 전환하려 하는 것이다.

“정부, 시간강사 지원 확대하라” -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가 31일 정부 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시간강사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오는 8월 시간강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처우 개선을 위한 인건비 부담이 커져 오히려 대량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실 대학 입장에서 겸임교수가 시간강사보다 여러모로 부담이 적다. 겸임교수는 다른 직장에 적을 둔 사람으로, 산업체 실무 경험을 대학에서 강의한다. 소속된 직장에서 4대 보험료나 퇴직금 등을 받기 때문에 대학은 이 비용을 댈 필요가 없다. 임용 계약도 1년 이상만 하면 돼 시간강사(3년)보다 짧다.

그래서 대학들이 시간강사들에게 "재직증명서나 4대 보험 증명서, 사업자등록증 등을 발급해오라"고 해 이들을 겸임교수로 발령하는 것이다. 이런 제안을 받은 강사 중엔 "서류 조작이나 위장 취업을 할 수 없다"면서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당장 강의가 끊기면 생계가 어렵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강사도 적지 않다. 최근 한 강사는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했고, 이를 근거로 서울의 한 사립대 겸임교수가 됐다. 경북 한 사립대 예술 계열 시간강사는 "가짜 서류를 만드는 게 너무 찝찝해 고민했는데, 안 하면 대학에 찍히고 강의 배정도 못 받을 것 같아 결국 아는 협회에서 재직증명서를 떼어 냈다"고 했다. 서울 지역 한 사립대 처장은 "실기 수업이 많은 음대 등 예술 계통은 강사 비율이 높아 대학 입장에서 여러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시간강사를 초빙교수로 전환하는 대학도 있다. 초빙교수는 특정 분야 경력자로, 대학이 4대 보험 등은 보장해야 하지만 1년만 임용해도 된다. 경남의 한 사립대 시간강사도 최근 학교 측 초빙교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신학기에 10학점을 배정받았다. 이 대학 초빙교수 시간당 강의료는 시간강사보다 1만원 정도 적다. 학교 측 부담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김진균 한국비정규직 교수노조 성균관대 분회장은 "대학들이 허위 서류를 받아와서라도 강의하라고 하는 것은 강사법이 오히려 편법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사들 "불법까지 권하나"

교육부는 대학들이 시간강사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를 막기 위한 시간강사법 시행령을 31일 입법 예고했다. 시행령은 일부 강사에게 강의를 몰아주지 못하도록 강사의 주당 강의 시간을 6시간 원칙으로 하고, 특별한 경우에도 9시간을 넘지 못하게 했다. 겸임·초빙교수 강의 시간도 주당 9시간 이하로 제한했다.

하지만 시간강사를 위한다는 법이 오히려 시간강사들을 대량 해고하고 불법으로 내모는 현실을 교육 당국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교육부는 "시간강사 해고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고로 지원하겠다"고 했으나, 올해 예산에 288억원만 반영됐다. 대학들은 "그 예산으론 부족하다"며 "이대로 가면 시간강사를 더 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공일 한국비정규직 교수노조 부산대분회 사무국장은 "올 8월 법이 시행되면 재정 부담을 피하려는 대학들의 각종 편법이 더 심해질 것"이라면서 "시간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라는 것이 본래 시간강사법의 취지인데, 이와 정반대로 강사들이 불법까지 권유당하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