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있었던 국민은행 파업과 인터넷은행 신규 사업자 흥행 부진은 은행의 현주소를 되돌아보게 한다. 은행원 5000명이 일손을 놨는데도, 은행 고객들은 파업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지점 창구가 평온했다. 은행 거래 90%가량이 모바일, 인터넷으로 소화되고 있는 현실은 은행 지점망의 필요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노조원들은 파업을 통해 보수와 처우 면에서 원하는 바를 얻었을진 모르지만, 은행원을 '국민 밉상' 직업으로 전락시켰다.
한국에서 은행원이란 직업은 노력과 역량 대비 고임금을 누리는 대표적 직종으로 꼽힌다. 다수의 경영학자는 "은행원의 높은 연봉은 정부가 허용한 독과점 이윤으로부터 발생한 것 외에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고 있다.
한국에서 은행업은 사업 면허증으로 높은 진입 장벽을 쳐놓고,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기득권 집단이다. 평균 연봉이 1억원에 달하고, 해마다 3년 치 연봉을 챙겨주는 명예퇴직 등 이미 향유하는 기득권도 다른 직종 근로자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인데, 은행 상급노조는 올해 사업 목표 중 하나로 '주 4일 근무'를 내세웠다.
기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직원, 고객, 주주 등 이해 관계자 3자를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데, 한국의 은행원들은 고객과 주주는 경시하고 자기들 이익은 악착같이 챙기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라. 은행 서비스에 불만을 품은 고객이 얼마나 많은지. 월급쟁이 노후 대비 수단 중 하나인 퇴직연금은 예·적금 수익률보다 못한 쥐꼬리 수익으로 고객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은행들이 수수료 수익에 집착한 나머지 고위험 투자 상품인 주가연계증권(ELS)을 매년 수십조원어치씩 팔고 있다. 정부가 투기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부동산 정책을 내놓으면 우회로를 뚫어 정부 대책을 무력화해 온 게 한국의 은행들이다.
주주들은 호구에 가깝다. 지난해 시중은행들은 저마다 사상 최대 수익을 냈다며 성과급 잔치를 정당화했지만, 국내 은행 수익성은 바닥 수준이다. 투자된 자본금 대비 어느 정도 이익을 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이 10% 이상은 돼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정상 은행으로 평가받는데, 우리 시중은행들의 ROE는 7% 수준밖에 안 된다.
시장의 시선은 냉정하다. 국내 은행들의 부실한 경쟁력은 주가에 반영돼 있다. 기업의 전체 자산과 주가 총액을 비교하는 지표인 주가순자산비율(PBR)의 경우 국내 은행들은 40% 정도밖에 안 된다. 전체 자산이 1조원인데, 주가 총액은 4000억원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그들만의 리그를 개혁하기 위해 채택된 정책이 인터넷은행이다. KT와 카카오를 대표 선수로 한 인터넷은행이 등장하면서 서비스 경쟁이 촉진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핀테크 산업을 활성화하겠다며 추가 인터넷은행 설립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네이버 등 유력 주자들이 속속 사업 참여 포기를 선언하고 있다. 규제 장벽이 두꺼워 고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은행이란 업(業)의 본질은 고객 자산 관리와 자금 중개이다. 고객 자산을 불려주고, 잉여 자금을 수익성 높은 미래 성장산업으로 흘러가게 해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데 일조해야 한다. 이 같은 경제적 기여가 있어야 고액 연봉이 정당화되지 않을까. 그러려면 은행원들 각자가 경제와 금융의 흐름을 보는 안목부터 키워야 한다. 은행은 시대착오적인 호봉제 급여 체계를 직무급으로 바꾸고, 고객 만족도와 직원 처우를 연동시키는 보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금융 당국은 경쟁을 통해 혁신이 촉진되도록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인터넷은행 등 핀테크 기업들이 맘껏 활개를 칠 수 있게 규제를 대거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