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이

"감사합니다!" 수차례 내한한 영국 팝스타 미카(36)가 프랑스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국어로 소리쳤다.

지난해 프랑스 국영채널 테에프1이 방송한 '더 보이스-프랑스'에서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들은 한국 가수 유발이(31·강유현)가 자신을 멘토로 택하자 그녀 옆에서 즉흥연주를 한 뒤 외친 말이다.

유발이의 멘토가 된 미카는 그녀에게 '목소리 본질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미카가 준비한 것을 하지 말고 그냥 부르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불안했죠. 리허설도 못한 채 무대에 오르니까요."

유발이는 '더 보이스'에서 냇 킹 콜, 핑크 마티니 등의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목소리를 톺아봤다. 그동안 자신있는 피아노 연주에 집중했고, 목소리는 거들뿐이라고 여겼던 그녀다. "이전까지 목소리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어요. '제가 피아노를 치니 노래는 이 정도밖에 못해요'라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더 보이스'에서 발가벗겨진거예요. 노래가 끝난 뒤 긴 정적이 있고 기립 박수가 터져 나오자 엉엉 울었죠. 멋을 부리다 보면 본연의 것을 잃어버리게 되잖아요. 미카 덕에 본질인 목소리에 집중하게 됐죠."

여섯 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유발이는 2009년 밴드 '흠(Heum)'으로 데뷔했다. 이듬해 한국에서 '유발이의 소풍'이란 예명으로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데뷔 전까지는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생각에 신나게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실용음악 콩쿠르 등에서 상도 휩쓸었다. 그런데 오히려 앨범을 내자 힘든 시간이 찾아왔다. 유발이는 "그 안에서 처음 음악을 제대로 발견했어요"라고 털어놓았다. "10년 넘게 피아노를 쳤어도 몰랐던 것을 그 때 처음으로 느낀 거죠. 레슨에, 공연에, 소진이 되면서 힘듦이 찾아온 거예요. 그런데 음악이 또 위로를 줬지요." 유발이에게 또 전환점이 찾아왔다. 2015년 프랑스 파리 음악학교 콩세르바투아르 부르라렌에 입학했다. 유학 전 한달 동안 공연 50개를 보는 것을 목표로 프랑스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이곳에 매혹돼 결정한 것이다.

유학을 하면서 프랑스는 물론 영국, 독일 등 15개국을 다니며 공연했고 음악 친구들을 사귀었다. 공부도 열심히 했다. 재즈 작사가들 관련 논문을 썼다. '재즈 작사가들과 노랫말'이 주제로 작사가들의 스타일을 다섯 개로 분류한 참신한 논문이다.

내공을 쌓은 유발이는 귀국, 유발이의소풍이 아닌 유발이라는 이름으로 최근 첫 솔로 EP '?'(물음표)를 발표했다. 일상을 솔직하게 노래해 온 유발이다운 앨범인데, 감성은 더욱 깊어졌다. 유발이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음반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타이틀곡 '무얼 노래하고 싶은 걸까'에는 10년간 뮤지션으로서 살아온 자신의 고백을 담았다. 가장 사적인 것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처럼 '모두를 위한 곡'이 됐다.

'사랑은 아닐까' '왜?' '모르겠어요' '그렇게 산다' 등 총 5곡이 실린 이번 앨범은 물음표에 집중했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고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투영됐다.
"프랑스 유학 기간, 현지 언어가 유창하지 않으니 한국에서보다 말을 아끼게 됐어요. 근데 그렇다고 해서 본질 전달이 안 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단순하게 말해도 본질이 전달되는 것을 느꼈고, 덕분에 제 자신이 좀 더 직설적이 됐어요. 예전에 비유로 말했던 것을 좀 더 단순하게 이야기하는 거죠. 그런 점이 물음표로 수렴됐습니다."

유발이는 최근 가수 박기영(41)의 소속사 문라이트 퍼플 플레이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 가수 겸 배우 김창완(65)이 마련한 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나 금방 친해졌다.

"우선 육아라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호호. 무엇보다 언니가 고군분투한다며 저를 좋게 봐주셨죠. 여성 뮤지션으로서 엄청난 경험치를 갖고 계신 분이잖아요. 웬만한 일들은 다 겪어보셨으니, 제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신거죠.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이번 앨범 보컬 디렉팅도 봐주셔서, 덕분에 절제에 대해 배웠어요."

어느새 데뷔 10주년, 유발이는 "해가 거듭될수록, 앨범이 나올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커져요"라며 웃었다.

유발이는 3월16일 서울 대치동 마리아 칼라스홀에서 단독 공연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