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에서부터 닛산·포드·GM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선도 기업과 주요국 대표 기업들이 대대적인 감원에 착수했다.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 제조사인 대만 폭스콘, 미국의 양대 통신업체인 버라이즌과 AT&T,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블랙록,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노무라증권 등이 속속 감원 대열에 가담하고 있다. 미·중 무역 마찰 장기화, 중국의 경기 침체 가속화 등으로 세계 경제가 하강세로 돌아설 조짐이 보이자 기업들이 선제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인공지능 확산으로 산업 재편과 자동화 추세가 가속화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글로벌 주요 기업들이 줄이려는 일자리가 이미 10만개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해고 공포'가 세계 경제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이 태풍이 한국이라고 비켜갈 리가 없다. 세계경제 침체로 벌어지는 글로벌 고용 위축은 소비 위축을 낳고 선진국의 수입 축소로 이어지게 된다. 그 충격파는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 고스란히 닥쳐올 수밖에 없다. 경영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감원 압박을 받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금 한국 경제는 주력 산업 위축에다 정부의 반(反)시장 정책이 겹쳐 기업 활력과 경제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 있다. 지난해 세계경제가 평균 3.7% 성장하는 호황을 누렸는데 한국은 2.7%에 그쳤다. 반도체 호황이 저물어가고 글로벌 호황마저 끝나가면 한국 경제는 안팎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된다. 안 그래도 고용 부진이 심각한데 글로벌 감원 태풍까지 겹친다면 일자리 사정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의 한 업종이 처한 상황이 이런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 금형 산업은 수출 세계 2위, 생산량 세계 5위다. 그런데 전국 금형 업체의 12%가 모여 있는 경기도 오정산단은 인건비 절감을 위한 조업 단축으로 불 꺼진 공장이 늘어난다고 한다. 금형 산업은 제조업의 바탕인 뿌리 산업의 하나인데 뿌리가 상해가는 중이다. 전자·자동차 등 주력 산업 침체로 금형 등 뿌리 산업이 흔들리고 그 결과 주력 산업 경쟁력이 더 약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밖에선 국경과 업종을 가리지 않는 대량 해고 바람이 일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우리끼리 경제 적폐 싸움만 하고 있다. 외환위기 극복을 주도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경쟁력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엄혹한 시기를 각오해야 한다"며 '다음 위기는 고용 대란의 형태로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