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도 냉면 식당 인기··· 꿩고기 냉면에 노루불고기
돼지 비계로 지지는 평안도 녹두지짐, 서울 빈대떡 3배 크기
평양사람들, 떡국보다 만둣국이나 칼국수 즐겨 먹어
북한에서도 설은 가장 큰 명절이다. 냉면으로 이름난 평양 ‘옥류관’과 ‘청류관’, 주로 돼지 내장으로 끓이는 내포국으로 유명한 함경북도 회령의 ‘내포국집’ 등 북한 전역의 유명 음식점들은 설날에도 문을 열고 ‘민속 음식’을 선보인다.
유명 식당뿐 아니라 평양 시내 곳곳의 야외 매대들도 설 당일 솜사탕, 고기와 채소를 밀전병에 말아 먹는 밀쌈, 군밤, 군고구마, 땅콩, 단물(사이다) 등을 판매하며 설 분위기를 돋운다.
설에도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냉면이다. ‘옥류관, 청류관, 만경대천석식당을 비롯한 수도의 20여 개 식당들에서 꿩고기 국수(냉면)를 봉사하게 되며 경흥관, 평양오리고기전문식당 등 10여 개 식당들에서는 맛 좋고 영양가 높은 노루불고기를 봉사하게 된다.’(2017년 12월 31일자 노동신문)’
◇떡국은 꿩 국물에 끓여… 만둣국 더 즐겨 먹는듯
기본적인 설 음식은 남한과 비슷하다. ‘노동신문’과 ‘천리마’ 같은 잡지나 ‘조선민속음식’(2017년), ‘24절기와 조선의 민속’(2016년)같은 책자 등 대부분의 공식인쇄물에서는 떡국이 가장 대표적인 설 음식으로 나오지만,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만둣국을 더 즐겨 먹는 것으로 나와 매체와 실제 음식간에 약간의 괴리가 있어 보인다.
북한의 떡국은 꿩고기 국물을 기본으로 한다. 평양에서는 섣달 그믐날 꿩 한 쌍을 친지에게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이 ‘설꿩’으로 떡국 국물을 끓인다. 3~3.5cm 길이의 짧은 가래떡을 뽑아 하룻밤 굳혔다가 0.3~0.5cm 두께로 납작하게 떡국떡으로 썰어 사용한다. 평양에서는 떡국 대신 만둣국이나 편수(정사각형으로 빚은 만두)로 끓인 편수국을 먹기도 한다. 칼국수를 먹는 경우도 많다.
개성에서는 조랭이 떡국을 먹는다. ‘조랭이 떡국은 흰 떡국대를 나무칼로 조롱박 모양으로 썰어서 끓여 만든다. 박 모양의 떡을 많이 만들어 얼구어(얼려) 놓았다가 필요한 때에 끓여서 조랭이 떡국을 만들어 이용하였다. 이런 데로부터 개성 지방에서는 처녀들이 시집 갈 때 떡국을 만드는 나무칼을 준비하는 풍습이 생겨나게 되었다 한다.’(천리마 2003년 5호)
◇서울 빈대떡보다 3배 더 큰 평양 녹두지짐
설 대표 음식으로 떡을 빼놓을 수 없다. 가장 고급스럽고 독특한 건 개성의 ‘소머리떡’이다. 떡을 식혀서 썬 모양이 마치 소 머릿고기로 만든 편육 같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개성 지방에서는 설날 아침 소머리떡을 사돈집에 보내는 풍습이 있다.
설 명절 떡 가운데 누구나 즐겨 먹은 것은 찰떡이다. 조선료리협회가 2015년 편찬한 ‘사계절 민속 음식’에 따르면 ‘해방 후 우리나라(북한)에 와 있던 로씨야(러시아) 사람들이 우리의 찰떡을 맛보고 ‘존득존득 흘레브(빵)’, ‘매맞은 흘레브’라고 했다’는 재미난 이야기도 전한다. 황해도 연백 지방의 찰떡이 유명하다.
산적이나 지짐도 설날 즐겨 먹는다. 평안도 녹두지짐(빈대떡)이 유명하다. 평양을 비롯한 평안도 일대의 녹두지짐은 그 복판에 돼지 비계를 한 조각 놓고 지지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의 빈대떡보다 지름은 3배, 두께는 2배나 더 크다. 북한의 녹두지짐은 부드럽고 연한 것을 뜻하는 ‘부근부근’한 것을 맛있다고 여긴다. 녹두가 나지 않는 지방에서는 수수, 조, 강냉이(옥수수) 등 여러 잡곡을 이용해 지짐을 해 먹는다.
2005년 발간된 요리책 ‘민속 명절 료리’에는 35가지 설 요리가 등장한다. 이색적인 것으로 서해안 지역에서 먹는 해삼·전복·섭조개를 함께 졸인 ‘삼화졸임’과 평안도의 ‘소발통묵’(소족편)이 있다. 평안도의 명절 음식으로 ‘돼지 대가리 보쌈’도 나온다. 남한의 돼지 보쌈과 같지만 돼지 머릿고기를 눌러 만든 편육이 삶은 돼지고기 대신 나온다. 돼지 대가리 보쌈을 정월 명절에 먹으면 일년내내 건강하고 근심이 없어진다며 먹는 풍습이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설날 음료로는 수정과와 식혜를 즐겨 먹는다. 설에 마시는 술을 ‘세주(歲酒)’ 즉 설술이라고 하는데 데우지 않고 차게 마신다고 해서 ‘세주불온(歲酒不溫)’이라 불렀다. 북한에서는 설 음식을 설날에만 먹지 않고 잘 보관했다가 정월 대보름날까지 먹는다.
◆ 박정배는 한국, 중국, 일본 음식문화와 역사를 공부하고 글로 쓰고 있는 음식칼럼니스트다. 조선일보, 주간동아, 음식전문지 쿠켄 등에 오랫동안 음식 칼럼을 연재해왔다. ‘박정배의 음식강산’ 시리즈 3권 등 다양한 음식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