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의 위기가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35만7800여 명으로, 역대 최저치인 40만 명대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공식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이 1명대 아래일 거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정부는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올해 난임 치료 지원 예산으로 184억원을 확보했다. 지난해 관련 예산 47억원에서 4배가량 늘어났다. 작년에는 2인 가구 기준 월소득이 370만원 이하인 가구에만 난임 시술비를 지원했지만, 올해는 월소득 512만원 이하인 경우도 지원받을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난임시술이 가능한 의료기관은 총 158곳이다. 한 해 약 9만여 건의 난임시술(시험관아기 시술)이 진행되지만, 시험관아기(IVF) 임신율은 2012년 40.2%에서 2017년 37.2%로 3% 감소했다. 난임전문의 35년차 조정현(64)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에게 각종 임신 방해 요인에 대해 들어봤다.
―난임이 이르는 대표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늦은 결혼도 문제지만, 안정적 직업과 지위를 갖거나 내 집 마련을 할 때까지 출산을 미루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난자와 정자가 젊고 싱싱한 때를 다 보내고, 수태 능력이 떨어질 즈음에 임신 시도를 하는 거다. 알코올 섭취, 흡연,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남성은 음낭이 뜨끈뜨끈해져서 정자가 잘 생산되지 않거나 비실비실해진다. 과체중과 영양 섭취의 불균형으로 난임이 되기도 한다. 누구나 잠재 난임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임신(출산)에서 중요한 세 가지를 꼽는다면.
"수정 타이밍, 양질의 배아, 착상이다. 시험관아기 시술에서는 수정이 체외에서 진행된다. 양질의 배아를 만들기 위한 의료적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착상에 관해선 환자가 개인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특히 자궁내막이 그렇다. 자궁내막 상태는 착상 시 매우 중요하다. 호르몬 불균형이나 결핍은 호르몬제를 적절히 투입해 해결할 수 있지만, 자궁내막 상태는 환자의 숙제로 남아 있다."
―자궁내막은 어떤 조직인가.
"자궁이 수정란을 착상시키고 키워내는 '집'이다. 내막은 자궁내벽을 이루는 층으로 호르몬에 의해 여러 층으로 두터워진다. 임신이 되려면 내막에 착상돼야 하는데, 결국 수정란이 내막 표면에 잘 붙어야 하고 내막 속으로 파고들어 혈류를 잘 받아야 한다."
―자궁내막은 매달 생리혈에 의해 배출(생리)이 되는 조직으로 알고 있는데.
"자궁내막은 기본층과 기능층으로 나뉜다. 기능층은 내막 전체 두께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호르몬에 의해 두꺼워졌다가 임신이 안 되면 혈과 함께 기능층 모두가 떨어져 나가서 몸 밖으로 배출(생리)된다."
―내막은 배아의 착상 순간에만 중요한가.
"아니다. 배아의 특수세포들이 내막세포를 뚫고 들어가 엄마의 혈관과 연결이 돼 영양분을 얻어야 임신이 완성된다. 배아가 커져 태낭이 되고 태아가 돼 혈관이 생기면 모체의 혈관 파이프라인과 큰 호수를 만드는데 이것이 태반이 된다. 그제야 내막은 아주 얇아지고 모든 기능이 태반으로 옮겨간다."
―흔히 중절수술을 반복하면 내막을 다쳐 난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내막은 배란 때 두꺼워지고 임신이 안 되면 배출이 되는데 왜 그런가.
"중절수술(소파수술)로 인해 기본층이 망가져서다. 소파수술을 할 때 착상된 태아를 너무 강하게 긁으면 생채기가 생긴다. 기본층을 다치면 착상하기가 어렵다."
―소파수술 외에 자궁내막 상태가 안 좋아지는 이유가 뭔가.
"운동 부족과 난소 기능 저하 때문일 수 있다. 균 감염으로도 내막이 안 좋아질 수 있다. 여성은 대체로 30대 후반을 넘기면서 월경량이 줄어든다. 자궁으로 가는 혈액, 자궁내막으로 가는 혈액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또 외음부 쪽에서 위로 올라가는 상행 감염도 내막을 망가뜨릴 수 있다. 질염·내막염·난관염·골반염 순으로 올라가는데 이런 염증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균이 클라미디아균이다. 감염되면 내막은 물론이고 나팔관 기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자에 묻어 올라올 수 있고, 대중목욕탕을 이용할 때나 생리 중 성관계에서도 감염될 수 있다."
―착상이 잘되려면 자궁내막은 얼마나 두꺼워야 하나.
"내막은 배란 직전에 가장 두껍다. 착상에 문제없는 내막 두께를 7~8㎜로 본다. 10㎜ 미만이면 착상에 문제가 없다. 10㎜ 이상이면 자궁 내 폴립(용종)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배란 때 자궁내막 두께가 5mm 이하일 때다. 착상이 힘든 가련한(poor) 군이라고 본다. 아무리 좋은 아기씨(배아)라도 밭(내막)이 좋아야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자궁내막이 건강하고 정자·난자도 문제가 없는데 착상이 안 되는 이유는.
"임신 메커니즘이란 게 참 복잡하다. 타이밍과 배아에 문제가 없어도 착상 무렵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없어야 하고, 배아와 자궁내막 간 상호 물질 교환이 잘 이뤄져야 한다. 면역세포도 거부 반응이 없어야 한다. 마치 퍼즐 맞추기와 같다. 한 조각만 안 맞아도 실패다. 젊고 건강한 부부가 배란일에 맞춰 부부생활을 해도 임신할 확률이 8%밖에 안 된다. 그나마 시험관아기 시술이 있어 난임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될 수 있다."
―내막에 문제가 있을 때 치료법이 있나.
"내막 치료는 혈류와의 싸움이다. 내막으로 얼마나 많은 혈을 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래서 내막에 있는 혈액은 뭉쳐서 혈관을 막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피를 묽게 하고, 혈액 내 세포 중 수정란을 공격할 만한 세포들을 잠재우는 약재들을 선택한다. 수정란이 자궁내벽에 잘 붙게 하는 보조제를 이식액에 첨가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노력들이 국내에서 제한받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내막 치료가 국민건강보험법상 임의 비급여(불법 및 환수 대상)에 해당돼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