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이 깔린 테이블 앞에 앉았다. 역사책에 나오는 술탄처럼 콧수염을 멋지게 꼰 주인장이 웃으며 인사를 했다. 나처럼 어색한 영어 악센트가 귀에 박혔다. 메뉴판을 볼 필요도 없이 주문을 넣었다. "버터 치킨(butter chicken) 플리즈."
몸매가 밀가루 포대 같았던 주인장은 국자로 소스를 퍼서 살짝 데우더니 내 앞에 얄팍한 접시를 내밀었다. 버터 치킨은 영국에서 탄생한 인도 카레다. 마치 한국의 짜장면과 같이 다른 나라 요리가 물 건너와서 토착화된 케이스다. 버터치킨은 인도 본토 카레보다 향신료의 향이 덜하고 대신 버터 등 유지를 넣어 맛이 부드럽다. 고슬고슬한 밥에 소스를 올려 비벼 먹으면 익숙한 맛이 났다.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뭉근히 끓인 닭볶음탕의 맛이었다. 호주 멜버른에서 이 음식을 먹으면 늦은 밤 학원을 기어 나오는 수험생처럼 진이 빠진 몸에 힘이 붙었다. 그리고 다시 일을 했다. 영어로 욕을 듣고 한국어로 울음을 삼키는 나날이었다. 쉬는 날이 되면 다시 닭볶음탕 맛이 나는 카레를 먹었다. 욕먹은 돈으로 그 값을 치르면 건조하고 뜨거운 멜버른 하늘이 위에 있었다.
닭볶음탕은 이래저래 동남아, 인도 쪽 요리와 맥락이 비슷하다. 여러 향신료, 그러니까 파, 마늘, 고춧가루 등이 들어가는 것이 그렇고 또 그것을 오래 푹 끓여 내는 조리법도 닮았다. 매운맛이 척추 신경 뿌리부터 파고들어 먹다 보면 온몸에 김이 나고 땀이 흐르는 연쇄 작용도 익숙하다. 그러나 앉은 자리에 버너를 놓고 펄펄 끓여가며 먹는 문화만은 한반도 특산품이다. 더구나 너른 평상에 여럿이 앉아 큰 냄비에 닭 한 마리를 넣고 오래 끓여 먹는 맛은 쉽게 대체할 수 없다. 발품을 팔아 충주호 근처 제천 학현리까지 내려가면 '학현슈퍼식당'이 있다. 본래 산골 작은 수퍼로 시작해 등산객과 현지 인부를 상대로 밥장사를 하던 곳이다. 직접 캔 산나물과 각종 장아찌, 도토리묵, 메밀전이 한 상 깔린 차림을 보면 손님을 허투루 받지 않는 집이란 게 느껴진다. 익히는 데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닭볶음탕은 그 사이즈가 남다르다. 닭다리 하나만 뜯어도 배가 어지간히 부를 정도로 뼈가 두껍고 살이 실하다. 서울로 올라와 북창동에 가면 '풍년 닭도리탕'이 있다. 서울로 올라온 닭볶음탕은 크기가 작아진 대신 나오는 속도가 빨라졌다. 맛은 무게감이 덜하고 대신 혀에 착 하고 달라붙는다. 여기에 남들 하듯 면 사리를 넣으면 전분이 우러나와 국물이 걸쭉해진다. 너도나도 숟가락·젓가락질을 하며 면을 건져 먹다가 냄비가 바닥을 보이는 것은 순식간이다. 매운맛은 단맛을 이기지 못하고 단맛은 면과 밥으로 이어지는 서사를 넘지 못한다. 면을 먹고 볶음밥까지 먹으면 한국인의 뿌리 깊은 정체성에 살짝 좌절감마저 든다. 염창동에서 영업하다가 강남 테헤란로 포스코 센터 지하에 분점을 낸 '유림'은 닭과 고추 양념이 이뤄내는 하모니의 최정점에 있는 집이다. 염창동 빗물펌프장 근처 언덕에 있던 가게 앞에 줄을 세우던 그 기세는 복잡한 도심 지하 아케이드 한구석 작은 평수로 옮겨와도 변하지 않았다. 호주 시절 먹던 버터 치킨처럼 각종 향신료를 갈아 넣어 만든 짙은 적(赤)색의 국물이 닭과 감자에 스며들어 있다. 토종닭을 써 살집이 남다른 닭을 씹고 큰 감자를 으깬다. 양념을 찰밥 위에 올려 살살 비비고 김치를 올린다. 뜨겁고 매운 기운이 혈관을 타고 돈다. 공작 기계처럼 아귀가 딱딱 맞는 맛이다. 밀물이 들어오듯 위장이 차오른다. 북적북적한 강남 지하에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여기가 한국이고 여기가 서울이다. 뜨겁고 매운 닭볶음탕을 먹는 사람들이 사는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