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의 중국 견문록|김민호 지음|문학동네|320쪽|2만원
"이 책문(柵門)은 중국의 동쪽 변두리임에도 오히려 이러하거늘 앞으로 더욱 번화할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한풀 꺾여서 여기서 그만 발길을 돌릴까 보다 하는 생각에 온몸이 화끈해진다."
1780년 청 건륭제의 70세 탄생일을 축하하고자 중국에 들어가던 연암(燕巖) 박지원은 당시 조선과 청의 실질적 국경이었던 책문을 둘러본 소감을 이렇게 기록했다. 조선에서는 보지 못한 화려한 문물을 만난 박지원은 '문화의 힘'에 주눅이 들지만, 이내 마음을 돌려 객관적으로 선진문명을 둘러보겠다고 다짐한다.
한림대 중국학과 교수인 저자는 연행록(燕行錄)과 표해록(漂海錄)을 통해 연행사와 조선 선비들이 방문하고 상상했던 중국 지역의 이미지를 살펴본다. 명말청초 연행록에서 강하게 나타나던 청에 대한 오랑캐 이미지는 18세기에 들어서면서 희석되기 시작한다. 북학파 계열 연행사 홍대용은 청나라 방문이 수십 년 평생의 소원이라고까지 하며 중국 방문을 기대했다. 청대 문화의 중심지 유리창, 서양의 과학기술을 만날 수 있었던 천주당 등에서 신문물을 접하며 부러움과 위기의식을 함께 느꼈던 조선 지식인들의 속내가 생생하게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