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 박수진, 박보영, 손나은….

이들의 공통점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주류 기업 무학의 소주 브랜드 '좋은데이' 모델이었다는 점이다.

스키니진에 배꼽티를 입고 긴 생머리를 흔들며 춤을 추던 아이돌그룹 에이핑크의 손나은,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눈웃음을 짓던 배우 박보영 등 광고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여자친구로 삼고 싶은 매력의 배우를 모델로 기용했다는 점은 같았다.

무학이 지난 9일 광고 모델을 친근하고 푸근한 이미지의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로 교체했다고 밝혔다. 무학 관계자는 "소비자를 젊은 층에서 중장년층까지 확대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순박하면서도 냉철하고 정확한 평가의 이미지를 보여준 백 대표를 통해 음식과 잘 어울리는 소주 '좋은데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선명하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 대표가 맛있다고 하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팬덤(fandom ·충성 고객)을 소주 시장까지 끌어오겠다는 전략이다.

그동안 아이돌이나 배우 등 여성 스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소주 모델의 무대로 중년 남성 스타들이 커튼을 열고 들어오고 있다. 백 대표에 앞서 가수 김건모가 있었다. 2017년 대선주조가 대선소주를 출시하며 첫 모델로 기용했다. 대선 측은 "당시 고객들을 대상으로 모델 추천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1위로 김건모씨가 뽑혔다"며 "예능 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를 통해 보여준 애주가 면모가 소비자들에게 어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주 한 잔이 오고 가는 술자리에는 주당이라 불리는 친구가 흥을 더하며 분위기를 주도하기 마련인데, 김건모씨가 이런 이미지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조우현 대선주조 대표는 "당시에는 소주 모델로 중년 남성을 기용하는 것에 대해 우려 섞인 시선도 있었지만, 출시 2년 만에 큰 성과를 거뒀다"고 했다. 대선소주의 누적 판매량은 2년 동안 2억병을 돌파했고,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부산 소주 시장 점유율 69.2%, 대형 마트·수퍼 등을 포함한 부산 전체 점유율이 56.7%에 이른다. 현재 대선은 김건모와 여성 그룹 마마무를 공동 광고 모델로 기용하고 있다.

처음부터 소주 모델이 미녀 톱스타의 전유물이었던 건 아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노주현과 백일섭, 권해효 등 남성 배우가 주류였다.

소주 모델이 젊은 미모의 여성으로 공식화된 건 1998년 참이슬이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를 모델로 쓴 후 판매량이 1998년 2430만병에서 1999년 9450만병으로 4배 정도 급증했기 때문. 이후 참이슬은 황수정, 박주미, 김정은, 최지연, 김태희, 성유리, 남상미, 김아중, 김민정, 하지원, 이민정, 문채원, 공효진, 아이유, 아이린 등 맑고 깨끗한 이미지의 여성 스타로 계보를 이어갔다.

이후 라이벌인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이 2007년 이효리를 앞세워 '흔들어라 캠페인'을 진행하며 '효리주(회오리주)'로 연간 4억병을 팔아치우자 소주 모델은 여성 스타로 공식화됐다. 당시 처음처럼은 이효리를 통해 소주 업계 순위가 6위에서 2위로 단번에 뛰어올랐다. 이후 포미닛의 현아, 카라의 구하라, 씨스타의 효린, 수지 등 섹시하고 발랄한 이미지의 여성 스타를 선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었다. 페미니즘 열풍이 먼저 이유로 꼽힌다. 갈수록 어린 여성 모델이 등장하는 소주 광고는 대표적인 성상품화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2017년 한라산 소주가 이주 여성 모델을 내세워 한 광고는 성적 대상화 논란에 휩싸여 공식 사과 뒤 관련 포스터 전량을 회수했고, 신세계그룹의 제주소주 역시 같은 이유로 지탄을 받았다. 포스터에는 가수 소유가 "너는 어떤 밤이 좋아? 푸른밤, 긴밤, 짧은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여성 모델이 너무 많아 차별화가 필요했다는 분석이 있다. 전국에서 판매되는 14개 소주 중 여성 단독 모델을 쓰지 않는 건 4개뿐이다. 소주의 이미지에는 친근한 중년 남성이 더 어울린다는 주장도 많다.

소주의 저도화(低度化)도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 참이슬은 아이유와 함께 남자 배우 박서준을 모델로 뽑았는데 이는 '남녀가 같이 마시는 술'이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경제적 이유도 크다. 소주업계 모델료는 정상급 아이돌 스타가 10억원 정도인데, 백씨는 이보다는 적은 금액으로 무학과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