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없이 나홀로 하차 - 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오목교역 근처에서 한 어린이가 학원 차에서 혼자 내리고 있다. 2015년 시행된 세림이법에 따라 13세 미만 어린이가 타는 모든 통학차량에는 운전자와 별도로 승하차 지도를 돕는 보호자를 두게 돼 있지만 상당수 통학차량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2013년 3월 충북 청주에서 세 살 김세림양이 목숨을 잃었다. 김양을 내려주고 후진하던 25인승 어린이집 버스가 혼자 걸어가던 아이를 덮쳤다. 김양 아버지는 보름 후 청와대에 편지를 보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법을 만들어달라.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꼭 도와달라'고 했다.

2015년 국회에서는 13세 미만 어린이가 타는 9인승 이상 통학 차량에는 운전자 이외에 승하차를 돕는 성인 보호자를 반드시 태우게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아이의 이름을 따 세림이법이라고 불렀다.

세림이법은 2015년 대형(15인승 초과) 통학 차량을 시작으로 2017년부터는 모든 유치원·어린이집·학원 통학 차량에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성인 보호자를 고용해 어린이의 안전한 승하차를 지도하는 통학 차량은 찾기 어려웠다.

지난 15일 오후 5시 30분쯤 서울 양천구 오목교역 인근에 노란색 승합차 한 대가 대로변에 섰다. 초등학생 한 명이 혼자 문을 열고 내리더니 곧장 일방통행 4차선 도로를 내달려 길을 건넜다. 차가 올 경우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차 안에는 아이를 말릴 성인 보호자는 타고 있지 않았다. 운전자는 아이가 내리자마자 액셀을 밟아 자리를 떠났다.

본지가 15~16일 학원이 밀집한 서울 양천구 목동과 노원구 상계동에서 12대의 어린이 통학 차량을 확인한 결과 성인 보호자가 탑승한 차량은 3대뿐이었다. 승하차 보호자를 고용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Y학원 통학 차량 운전자인 민모(72)씨는 "버스도 아닌 작은 승합차라 아이들이 많이 타지 않는데 굳이 보호자까지 고용할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

음악 학원을 운영하는 오모(34)씨도 "학원 운영비가 많이 들어 2년 전 고용했던 50대 성인 보호자를 지난해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세 학원들 가운데는 성인 보호자를 고용하는 대신 벌금 20만원을 내겠다는 곳이 많다"고 전했다.

학부모들은 "세림이법이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된 것 같다"며 불안해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이희경(40)씨는 "2년 전 초등학생 2학년 딸 아이가 다니는 영어 학원에서 세림이법을 이유로 학원비를 2만원 올렸다"며 "그런데 대부분 학원 차량이 보호자를 태우지 않다 보니 언제부터 학원 차에 성인 동승자가 없더라"고 했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직장인 강모(34)씨는 "유치원부터 태권도 학원까지 아이가 매일 통학 차량을 네 번씩 타는데 성인 보호자가 탄 것을 본 적이 없다"며 "학원가(街)가 대로변에 있는데 혹시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하지는 않을지 늘 불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맞벌이 등의 이유로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하는 부모 입장에서 학원에 무조건 "법을 지켜라"고 요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학원가에서는 비용 문제를 들었다. 박윤영 한국학원총연합회 부장은 "정부 지원금 없이 영세 학원이 월 180만원씩을 내고 성인 보호자를 고용할 수는 없는 실정"이라며 "학부모 반발 때문에 차량 운행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2016년 경찰은 대대적인 단속을 벌어 총 254건의 세림이법 위반 차량을 적발했다. 위반 차량은 그대로인데 지난해 단속 실적은 48건뿐이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사고가 난 경우에만 세림이법을 지켰는지 확인하고 단속한다"며 "학원가의 반발이 워낙 거세 제대로 된 단속이 어렵다"고 했다.

현재 전국에 신고된 어린이 통학 차량은 12만3452대다. 지난해에만 16건의 어린이 통학 차량 사고가 일어나 48명이 다쳤다. 홍성령 교통안전공단 교수는 "어린이들은 차량 사고에 대한 위험 인식이 떨어지기 때문에 성인의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정부가 영세 학원에 일부 비용을 지원해주거나 통학버스 차량을 여러 학원이 통합해 운영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