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라는 게 아주 작은 물방울로 이뤄졌잖아요. 입자 하나하나의 크기와 질감을 모두 계산해서 표현하는 게 생각보다 쉽진 않았어요. 공기의 흐름, 빛의 움직임까지 감안해야 하죠. 하지만 그 모든 과정 끝에 엔터 키를 탁 눌렀을 때, 진짜 구름 같은 구름이 나오면 기분 참 끝내주죠(웃음)."
이도민(43)씨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 드림웍스에서 12년째 일하고 있는 시각특수효과 아티스트 팀장(Lead Effects Artist)이다. 드림웍스에서 일하면서 '가디언즈'(2012) '드래곤 길들이기 2'(2014) 같은 작품을 만드는 데 참여해왔고, 30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 3'의 주요 장면도 총괄했다. 드림웍스 내에서 '시퀀스 팀장'이란 명칭으로도 불린다.
16일 전화로 만난 이씨는 "그간 기술의 한계로 못 해봤던 많은 것을 '드래곤 길들이기 3'를 만들면서 맘껏 해봤다. 시각 효과에 있어서만큼은 지금까지 나왔던 애니메이션 중 최고라고 자신한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기자 시사를 통해 공개된 '드래곤 길들이기 3'는 기존 1·2편이 보여줬던 즐거움과 매혹을 뛰어넘는다. 주인공인 까만 용 '투슬리스'가 새로운 용 '라이트 퓨어리'와 함께 구름을 가르며 하늘을 나는 장면만으로도 봐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이씨가 주로 도맡아 표현한 장면 역시 바로 이 '구름 시퀀스'와 두 용이 밤하늘을 날고 터널을 지나 숨겨진 세상으로 향하는 이른바 '로맨틱 플라이 시퀀스'다. 이씨는 "사람이 사물을 인식할 땐 홍채가 빛을 인식해서 사물을 인지하지 않나. 실감 나고 효과적인 장면을 만들기 위해 사람 눈이 이미지를 인식하는 과정 그대로 프로그래밍을 해서 장면 장면을 완성했다"고 했다. "애니메이션 특수효과라는 게 참 역설적인 작업이에요. 저희가 특수효과에 심혈을 쏟을수록 모든 장면이 진짜처럼 실감 나게 느껴지는데, 바로 그 과정을 통해 오히려 환상적인 상상의 세계가 완성되죠. 가장 실감 나는 기법으로 비현실적인 세상을 그려내는 건데, 그게 또 흥미진진합니다."
영화 속 어마어마하게 큰 폭포가 쏟아지는 장면도 이씨와 그 팀원들의 손을 거쳤다. 거대한 물줄기가 관객을 삼킬 듯 떨어져 내린다. 이씨는 "압도적인 느낌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 우리나라 잠실 운동장 20배쯤 되는 크기의 폭포를 시뮬레이션해서 완성했다"고 했다.
한양대 공대 출신. 2007년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인턴으로 취직했고, 같은 해 드림웍스에 정직원으로 스카우트됐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애니메이션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컴퓨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우연히 특수효과 프로그래밍을 해봤는데, 머릿속 생각이 눈앞에서 구현되는 걸 보니 소름이 돋더라고요(웃음)!"
드림웍스에 입사한 초창기엔 영화나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만 쓰이는 전문용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고생하기도 했다. 이씨는 "그래도 한국인이어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고 했다. "드림웍스는 다양성을 중시하는 회사예요. 미국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저는 그 덕분에 다른 상상력과 감수성을 보여줄 수 있어요. 오래 즐겁게 일한 비결이죠."
이씨의 꿈은 현재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와!" 하고 환호할 수밖에 없는 애니메이션을 완성하는 것. 이씨가 "이번엔 해낸 것 같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