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하면서도 우아한 한글 궁체(宮體)가 날렵한 맵시로 한지 위를 흐른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공주(정실 왕비가 낳은 딸)인 덕온공주(1822~1844)가 한글로 쓴 '자경전기(慈慶殿記)'. 덕온공주의 할아버지인 정조 임금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지은 전각 자경궁의 유래를 밝힌 책으로, 덕온공주는 원래 한문으로 쓰인 이 책을 번역해 아름다운 한글 궁체로 손수 써 내려갔다. 편지부터 역사책까지, 조선 왕실 여성들 사이에서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은 한글이었다.
이 책을 비롯한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 자료 68점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문화재청과 국립한글박물관은 국외소재재단이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매입해 들여온 이 자료들을 16일 공개했다. 덕온공주는 조선 23대 왕 순조의 셋째 딸로, 사극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박보검이 맡았던 역할인 효명세자(익종)의 누이동생이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덕온공주의 양자 윤용구, 손녀 윤백영 등 후손이 3대에 걸쳐 쓴 한글 책과 편지, 서예 작품 등이다.
이 중 덕온공주 친필인 '자경전기'와 '규훈(閨訓)'은 처음 발견된 것이라 희소성이 크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또 ▲순원왕후, 신정왕후(익종 비), 철인왕후(철종 비), 명성황후(고종 비) 등이 보낸 편지 ▲조선 최고의 한글 명필로 알려진 궁중 여성 '서기(書記) 이씨'의 대필 편지 등이 포함됐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오는 4월 25일부터 열리는 특별전에서 이번에 환수된 유물을 포함한 덕온공주 관련 유물 200여 점을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