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콘크리트 숲 속에 따뜻한 나무 건물이 들어선다. 흙, 돌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건축 재료이자 한때 현대적 재료에 밀려났던 목재가 세계적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높이 평가받는가 하면, 기술 발전으로 단점도 극복했다. 일본에선 도쿄올림픽 주경기장을 나무로 짓고, 북미와 유럽에는 목조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등장했다.

한국에도 목재를 써서 주목받는 건축물이 늘고 있다. 그동안 나무는 건물 일부 마감재나 한옥에 주로 쓰였지만, 최근 현대적 건물에도 철재와 벽돌, 콘크리트 등을 대체하고 있다.

◇한국 최대, 최고층 목조건축

목조는 건물 주요 뼈대를 나무로 만든 것을 일컫는다. 한국 최대 목조건물은 경기 수원시에 있는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자원연구부로 연면적 4552.55㎡, 지상 4층 규모다. 한국에 가장 많이 분포하는 낙엽송으로 골조를 만들었다. 이곳을 설계한 건축가 배기철(아이디에스건축사사무소)은 "목재의 현대적 가치를 드러내려 했다"고 말했다.

산림생명자원연구부 내부.
산림교육연구센터 3층 휴식 공간.

그는 한국 최고층 목조건물도 설계했다. 올 초 완공을 앞둔 경북 영주시 산림약용자원연구소로 높이 19.1m, 지상 5층 규모다. 건축법에 따라 5층 이상 12층 이하 건축물은 불이 나도 2시간 동안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목조건물을 높이 지을 수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2017년 산림과학원이 2시간 이상 견디는 목재를 개발해 길이 열렸다. 배씨는 "길이가 짧은 나무를 연결해 길게 만든 '구조용 집성판(CLT)'으로 짓는 건물"이라며 "이 프로젝트로 목조 건축의 안정성을 검증해 앞으로 더 높게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콘크리트 위에서도 돋보여

구조에 철근콘크리트 등 소재를 쓴 건물에서도 목재는 돋보인다. 서울 구로시장에 지어진 근린생활시설 '서편재'는 나무로 짠 소쿠리를 닮았다. 2017년 서울시건축상 우수상 수상작으로, 적삼목을 두께 12㎜로 얇게 켜서 유리 외벽에 둘렀다. 이곳을 설계한 건축가 이재성(지음재아키텍츠)은 "목재의 중요한 특성인 유연성을 이용했다"며 "비용도 많이 들지 않은 구조"라고 말했다. 수공예 작품을 연상케 하는 건물 외피는 실내로 드는 직사광선을 적절히 막는다.

서울 구로동의 근린생활시설 '서편재'. '작은 나무 서(㯕)' '엮을 편(編)'으로 '나무가 엮어진 집'이라는 뜻이며, 얇게 가공한 적삼목을 건물 외부에 둘렀다.
'시옷(ㅅ)집' 전경.

지난해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을 받은 전남 광양시 서울대 산림교육연구센터는 전체적으로 목조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건축가 조항만(서울대 교수)은 "한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며 "나무로 만든 3층 휴식 공간은 경주 옥산서원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했다. 같은 상을 받은 경기 양평군 '시옷(ㅅ)집'은 건축가 신민재(AnLstudio)와 안기현(한양대 교수)이 설계했다. 이름 그대로 시옷자 모양 나무 지붕이 눈에 띈다. 9m 길이 너른 창도 특징인데, 목조 트러스를 이용했다. 신씨는 "단순한 형태를 택해 최소 비용으로 담백하게 꾸몄다"며 "내·외부 바닥 마감을 나무로 통일해 경계를 두지 않으려 했다"고 했다. 주변 지형에 손대는 것을 최소화하고 순응한 구조가 두 건물의 공통점이며, 나무의 속성과도 어울린다.

◇"최근 급증했으나 아직 부족"

전문가들은 "목재로 지은 건물이 최근 크게 늘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아직 수입품이 주로 쓰이며, 나무 가공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해 비용이 더 드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건축가 이재성은 "한국에서 예상 비용 1억원이 책정된 작업이 일본에선 3000만원대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국립산림과학원 심국보 목조건축연구과장은 "지난해 지어진 목조건물이 1만7000여 동인데, 대부분 소형 주택이라 면적 기준으로는 전체의 1%도 안 된다"며 "친환경성과 단열 성능 우수 등 목재의 장점을 더 알리는 것이 과제"라고 했다.

"나무는 약하다? 충격 잘 흡수해 지진도 버팁니다"

목재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내화성(耐火性)은 최근 크게 향상됐다. 국립산림과학원 측은 "목재는 열 전달률이 낮아 생각보다 불에 강하다"며 "특히 최근 개발된 목재는 내화 성능이 강하고 안정적"이라고 했다. 건축법상 건물 규모에 따라 불에 1~3시간 이상 견디도록 설계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지어진 목조 건물도 이를 충족하도록 설계·시공됐다.

내구성도 마찬가지다. 건축가 이재성은 "몇몇 건물에서 덱 등에 나무를 잘못 사용해 나무가 약하다는 편견이 자리 잡았다"며 "용도에 맞는 수종을 쓰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서울 목동의 한 교회 어린이집 내부를 편백나무로 만든 건축가 이두열(경희대 교수)은 "목조는 충격을 잘 흡수해 지진에도 강하다"고 했다.

친환경성은 목재의 가장 큰 장점이다. 탄소 저장 효과가 대표적으로, 99㎡짜리 목조 주택 한 채가 저장하는 이산화탄소는 20t가량으로 알려졌다. 단열 성능이 우수해 냉난방 에너지 소비도 적다. 국립산림과학원 심국보 과장은 "목조가 더 널리 쓰여 국산 목재 유통이 늘면 다른 재료보다 비싸다는 단점도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