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 지난달 18일 특별한 장기(臟器)를 지닌 산악대원 10명이 모였다. 해발 6189m의 고산 히말라야 '아일랜드 피크' 등정 후 10년 만에 열린 동창회다. 나이·직업·사는 곳이 모두 다른 이들이 동창으로 묶인 건, 몸 속의 장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이 병원 장기이식센터를 통해 누군가에게 간·신장을 이식하거나 이식받은 장기 기증자·이식자다.
장기 이식자 7명, 기증자 3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10년 전인 2008년 12월 22일 히말라야 등정에 도전했다. 장기 이식자와 기증자도 일반인처럼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당시 40명의 기증자·이식자 중 산악 훈련과 의료 검진을 거쳐 10명이 선발됐고, 두 달간 매주 북한산·설악산 등에서 암벽 등반 같은 고강도 훈련을 받은 뒤 히말라야에 올랐다. 지금은 고인이 된 산악인 박영석씨가 원정대장을 맡았다. 장기기증센터장인 서경석 서울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가 단장으로 동행했다. 10명의 대원이 5200m 베이스캠프까지 함께 올랐고, 최종 선발된 3명이 아일랜드 피크 등정에 성공했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이들은 연신 "건강하게 지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충남 홍성에서 올라온 오의숙(61)씨는 "모든 대원이 건강한 삶을 살고 있어 너무나 기쁘다"며 "나 역시도 건강에 전혀 문제 없이 직장생활도 잘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오씨는 1999년 남편에게 간을 기증했다. 경기도 양주에 사는 김상돈(59)씨는 "히말라야 도전 후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생활하다 보니 한 번씩 앓던 감기도 사라졌다"고 했다. 김씨는 2004년 뇌사자의 간을 이식받았다.
이날 대원들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최근의 장기 기증 추세에 대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이들은 장기 기증 활성화에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히말라야까지 올랐지만, 최근 몇 년 새 장기 기증자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573명이었던 장기 기증자 수는 2017년 515명으로 줄었고, 지난해 12월 초 428명으로 줄었다. 2000년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장기이식법)이 시행된 뒤 2016년까지 매년 증가 추세였으나, 최근 2년간 감소세에 접어든 것이다. 반면 장기이식 누적 대기자 수는 2015년 2만7444명에서 2017년 3만4187명으로 증가했다.
간 이식자인 김준규(61)씨는 "이식 대기자가 3만 명이 넘는데, 장기 기증 건수는 2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 너무 안타깝더라"며 "간을 이식받은지 20년이 지났지만 합병증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서 교수는 "모든 대원이 의학적으로 매우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며 "법과 제도가 정비돼 더 많은 환자가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