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北京) 동북에 있는 왕징(望京)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북경 한미약품’ 공장. 지난 11일 중국 소아감기약 1위인 나얼핑(纳尔平) 등 시럽제를 만드는 1층 생산라인 위에 붙은 작은 패널에 분당 255란 숫자가 반복되고 있었다. 성인기 공장장은 "분당 생산량(병 기준)"이라며 "빈 병 투입에서부터 시럽을 생산해 담고 설명서까지 넣어 포장하는 150미터 라인 대부분을 자동화했다"고 말했다. 이 정도 제약 시설은 중국에서 존슨앤존슨의 상하이(上海)공장 정도라는 게 성 공장장의 귀띔이다.
일요일만 쉬고 24시간 가동해 작년엔 생산능력보다 500만병 많은 6500만병을 생산했다. 오는 3월 인근 보세구에 세운 사옥으로 사무공간을 모두 옮기고 비게 되는 2층 전체를 연말까지 생산공장으로 개조해 생산능력을 연간 1억2000만병으로 늘릴 계획이다. 공장 옆에는 8월에 완공될 9층짜리 무인창고 공사가 한창이다. 인근 건물을 임대해 쓰는 지금보다 연간 2000만위안(약 33억원)의 창고 비용을 절감하고 자동화 덕에 인위적인 품질문제 발생 소지를 차단한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
중국 어린이 의약품 시장 1위업체 북경 한미약품의 임해룡 총경리(CEO)는 "중국에서 한미약품이 만든 18개 제품을 접하는 아동들이 한달에 1000만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장호원 부총경리는 "출시 25년된 유산균 정장제 마미아이(妈咪爱) 판매량이 작년까지 40억 스틱으로 지구 둘레를 8바퀴 반 돈 수준, 5억명의 아동이 복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마미아이 출시 2년 뒤인 1996년 설립된 북경 한미약품은 지난해 13억 7000만위안(약 223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01년부터 현지 공장을 가동하면서 본사 매출의 35%를 책임지는 성장 축으로 성장했다. 2018년 성장률은 7.3%로 2017년의 16%에 비해 절반이하로 줄었다. 의약품 매출만 보면 12% 늘어 작년 중국 병원 의약품 시장 성장률(3.2%)의 4배 수준에 달했다.
올해는 생산시설 확충과 함께 2008년에 세운 연구소 주도로 중국발(發) 신약 성과 내기에 속도를 낸다. 정철웅 북경한미약품 연구소장은 "10년 이내에 50여개 신제품을 내놓을 예정으로, 이중 신약은 올해 임상 1상에 들어가는 것을 포함해 3개 정도 출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말했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꺼린 틈새시장, 아동용 제약에 집중한 덕에 중국 시장에 안착했지만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성인 약 시장에서도 진검승부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동 약은 전체 제약시장의 5%에 불과하다.
♢ ‘농촌으로 도시 포위’ 마오쩌둥 전술 통할까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한중 수교전인 1988년부터 중국을 왕래하면서 어린이들이 성인용 약을 쪼개 복용하는 걸 보곤 어린이 의약품 시장에 주목했다고 한다. 임해룡 총경리는 "복용 용량이 부정확해 안전한 아동약의 시장이 커질 것으로 봤다"며 "개발과 임상 난이도가 높고 판매가격이 낮은데다 전체 제약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대부분의 선발 제약사들이 기피하는 시장이라는 사실도 아동용 시장에 먼저 승부수를 띄운 배경"이라고 말했다.
1994년 마미아이를 내놓아 유산균 정장제 시장 1위에 올라선 한미약품은 10년만인 2004년 소아 감기약 나얼핑과 소아 진해거담제 이탄징(易坦静)을 출시해 모두 해당 시장 1위로 키웠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주고객인 중국의 3급 병원(1000병상)보다는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2급병원(200~1000병상)을 우선 공략했다.
중국에서 아동용 약과 중소규모 병원을 먼저 뚫은 한미약품의 전략은 마오쩌둥(毛澤東)이 국민당 세력이 취약한 농촌을 먼저 장악한 뒤 도시를 공략한 '농촌포위도시전략(農村包圍城市戰略)'을 떠올리게 한다.
마오쩌둥의 전술을 떠나 후발주자면서도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와 유통업체로 각각 성장한 화웨이나 월마트가 선발업체들의 관심 영역 밖인 지방의 소도시(틈새 시장)부터 장악해 도시(주류시장를 파고 들어간 전략과 다르지 않다.
임 총경리는 "정면 승부의 시기가 오고 있다"며 "중국에서 앞으로 갈 길은 소화기계, 호흡기계, 고혈압 당뇨 항암 등 성인질환 관련 신약"이라고 말했다. 메창안(美常安⋅정장제)과 리동(利动⋅변비약) 같은 소화기계 약물은 작년 11월 중국 국가기본약물에 올랐다. 오는 7월엔 자체 기술력과 마미아이 브랜드 영향력을 활용해 유산균이 포함된 영유아용 로션 화장품도 내놓을 계획이다.
♢중국연구소, 분소가 아닌 글로벌연구기지
북경한미약품 3층에 위치한 연구소에 올라서니 실험실 안에 있는 비글독 원숭이 등의 모습을 영상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원숭이만 72마리가 있는데 어지간한 동물원보다 많다"(임 총경리)고 한다. 정철웅 연구소장은 "중국에서는 실험용으로 원숭이를 구하는 게 한국보다 쉬운데다 비용도 낮다"고 전했다.
연구인력은 169명으로 북경 한미 전체 인력의 12.8%에 해당한다. 연구인력의 60%가 베이징대 칭화대 선양약대 난징약대 등 명문대 인재들로 구성됐다.
북경 한미약품은 지난해 연구개발에 1억6400만위안(약 267억원)을 투입했다. 매출의 12%에 달했다. 정 소장은 "매년 매출의 10%이상을 투자하고 있다"며 "2011년에 외자기업으로 처음 베이징시 지정 기업 연구개발센터로 지정 받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50여개 이상의 신제품을 개발중으로 올해부터 매년 평균 4개 약품 허가를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약 연구도 속도를 낸다. 권세창 한미약품 사장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난 9일(현지시간)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전 세계 폐암 환자의 40% 이상이 거주하는 중국에서 포지오티닙의 독자 임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포지오티닙은 한미약품이 스펙트럼에 기술 수출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다. 스펙트럼이 올해 연내 승인을 목표로 일정을 진행 중이며 임상 2상 결과를 바탕으로 FDA 시판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한미약품은 2022년 중국에서의 시판 허가를 목표로 올해 상반기 중국 임상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북경한미약품은 특히 이중항체 플랫폼 ‘펜탐바디’를 적용한 새로운 표적-면역 항암 신약의 글로벌 임상도 올해 4분기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중국 바이오업체인 이노벤트바이로직스와 손잡고 진행중이다. 2017년 JP모건 컨퍼런스에서 처음 공개된 펜탐바디 기술은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의 효능을 합칠 경우 암세포 박멸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북경한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다.
연구 성과는 특허 증가로도 나타난다. 북경한미약품이 출원해 획득한 특허는 지난해 18건으로 2015년 5건의 3배를 넘었다.
♢생산⋅연구⋅영업 현지화 올인
임해룡 총경리는 "1320명의 인력 가운데 주재원은 8명"이라고 전했다. 한미약품의 현지화 노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중국 전역을 커버하는 현지 영업인력 덕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장호원 부총경리는 "800명의 영업인력이 하이난섬에서부터 신장의 우루무치까지 중국 300개 도시 9000개 병원 15만명의 의사를 상대로 대면(對面) 영업을 하고 있다"며 "대리상을 통해 접근하는 다른 다국적 제약사와 접근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장 부총경리는 "중국은 땅이 커서 한국식의 맨투맨 영업이 힘들지만 태블핏 PC에 기반한 모바일 오피스로 전국망을 구축했다"며 "대면 영업은 브랜드의 신뢰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영업직원의 69%가 의약학 전공자로 매달 케이스스터디를 학습하는 등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온라인 심포지엄 개최 등 학술마케팅도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에 집중에 성과를 보고 있다. 실시간의 질의응답을 하는 이 프로그램에 평균 2000~3000명의 의사가 시청한다.
북경한미약품은 올해 경영슬로건을 ‘질(質),승(勝)’으로 정했다. 컴플라이언스의 질, 제품의 품질, 직원의 소질, 임상과 학술의 질 등 4대 질 향상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임 총경리는 "중국에서 지난해 가짜백신 같은 사건으로 품질이 회사 생존을 좌우하는 이슈가 되고 있다"며 "외자기업이기 때문에 품질은 물론 환경이나 안전생산 윤리경영은 생존에 직결된 문제"라고 말했다. 시진핑 정부 집권이후 강화된 반부패 운동으로 윤리경영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공장이 24시간 돌아가는데 한번의 실수만 생겨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매일 매일이 긴장"이라고 전했다.
♢고객과 직원의 마음을 얻었다
북경한미약품은 어린이 약품으로 성장한 기업 답게 생활이 어려운 아동 돕기에 특화한 사회적책임(CSR) 활동을 벌이고 있다. 본사의 사랑의 헌혈을 본딴 헌혈운동도 하지만 뇌성마비 고아 재활센터, 중증 장애자만 있는 고아원인 아동 희망의 집, 감옥에 간 부모의 자녀가 있는 태양촌, 의사가 없는 무의촌 등에 응급약 세트를 보내거나 무료 진료 봉사를 하고 있다. 응급약 세트에는 한미약품의 약 뿐 아니라 다른 회사의 약도 함께 담아 보낸다. 제품 홍보 수단이 아닌 마음을 담아 보내는 채널인 것이다.
임 총경리는 "CSR은 직원의 자발적인 참여로 자원봉사단을 운영하고 우수 봉사상을 연간 1회 시상하고 있다"며 "CSR는 회사에 대한 자긍심을 주는 내부 소통의 채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회사 직원의 단결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북경한미약품은 10년내 10억달러(약 1조 1200억원)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매출의 5배 수준이다. 중국에서는 최근 민생개선 정책 영향으로 약품 입찰가와 의료보험수가가 떨어지고, 병원 제로 마진 정책이 이어지면서 병원 의약품 시장의 성장세가 떨어지고 있다.
임 총경리는 "아동약 및 산부인과약의 장려 정책과 2자녀 출산장려 정책, 고령화, 의료보험 확대 등으로 의약품 시장은 완만하지만 꾸준한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며 "복제약에 집중하는 3000여개 제약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신약개발과 성인용 시장으로 확장해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