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한국 토종 공룡 보며 성장했으면"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이후 10년간 공룡에 매달린 EBS PD 한상호
영화 '점박이2'는 기술의 대장정, 세계적 프랜차이즈 이어갈 것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 ‘쥬라기 공원'을 만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코스타리카 연안의 이슬라 누블라 섬에서 ‘모가지가 길어서' 한없이 우아한 브라키오사우루스를 처음 목격했을 때의 그 놀라움이란! 공룡은 그렇게 호박 화석에 갇힌 모기 피에 운반되어 인간의 삶에 속으로 들어왔다.
한때 ET를 싣고 자전거를 달리던 스필버그는 백악기를 주름잡는 슈퍼스타 티라노사우루스와 영리한 사냥개 밸로시랩터와 고공의 눈이 영묘한 브라키오사우루스와 드넓은 초원, 양치식물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했다. 지구 최상위 포식자가 지프차를 덮쳐올 땐 오줌을 지릴 것처럼 공포에 떨다가도, 고고학책에서 잠자던 지구의 유년 시절과 조우하는 기쁨은 상상이었다.
‘쥬라기 공원'이 준 문화적 경제적 파장이 얼마나 컸던지, 정부는 ‘쥬라기 공원' 한 편이 벌어들인 돈이 현대차 150만대를 수출해서 얻은 이익과 같다며 영화산업육성을 부르짖기도 했다. 당시 CG 기술을 이용해서 나온 첫 한국 영화는 ‘구미호(1994년)'.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룡과 구미호의 간극은 아메리카 대륙과 한반도의 거리만큼 멀었다.
그로부터 15년 뒤. 드디어 한국의 안방에서 공룡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2008년 11월 밤 10시, 나는 EBS에서 ‘한반도의 공룡'이라는 역작 다큐멘터리를 송출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8천만 년 전 경남 고성군 덕명리. 낮고 그윽한 산야와 드넓은 호숫가에 쿵쿵 대지를 울리며 걷던 타르보사우루스의 발자국 소리를. 4살 어린 아이부터 성인들까지 ‘한반도의 토종 공룡'이 태어나던 그 장면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목이 긴 부경고사우루스가 물을 마시고, 약삭빠른 밸로시랩터가 사냥감을 찾아 언덕을 내려오고, 새끼 공룡 ‘점박이'가 어미가 토해낸 고깃덩이를 받아먹는 모습을. ‘쥬라기공원'을 볼 때와는 다른 종류의 환희와 자부심이 벅차올랐다. ‘한반도의 공룡'은 고성 영월 등지에 있는 무수한 발자국 화석을 근거로 한반도가 가히 육식과 초식이 풍부하게 어우러진 공룡들의 무도회장이었다는 고증으로 만든 팩션 다큐멘터리.
공룡들의 낙원을 완벽하게 재현한 남자, 한국의 스필버그를 소개한다. EBS 한상호 PD. 그는 이후로 10년째 공룡과 씨름 중이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었던 얼룩무늬 타르보사우루스 ‘점박이'를 주인공으로 2012년 영화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을 만들어 백만 관객을 모았던 이 집념의 사나이는, 최근 두 번째 영화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2;새로운 낙원'을 만들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개봉한 ‘점박이2’에서 ‘점박이'는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직접 자기 삶을 ‘말하는' 공룡으로 성장했다.
오로지 공룡들만 출연한 극영화는 할리우드에도 유례가 없는 일.
실사처럼 연기하는 공룡, 물, 불, 용암 등의 특수효과, 오케스트레이션, 광대한 자연환경을 CG로 설계하는 데 7백 명의 스태프가 5년을 매달렸다. ‘점박이2’는 백악기 시대 공룡 왕이 된 ‘점박이'가 납치된 막내와 다른 꼬마 공룡을 구하기 위해 돌연변이 괴물과 맞서는 이야기다. 아버지 ‘점박이'의 부성애와 겁많은 ‘막내'의 성장기, 초식 동물들과의 우정이 주를 이룬다.
한상호 감독을 만났다. 10년 동안 함께 그와 협업했던 영화제작사 드림써치 사무실은 거대한 공룡 구조물과 피규어, 뼈와 일러스트레이션이 가득했다. 잘 재단된 코트에 투명 뿔테 안경을 낀 모습이 흡사 영국 도서관의 고고학자 같은 클래식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23년간 EBS PD로 재직하는 동안 총 3편의 다큐멘터리와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2008년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을 봤을 때의 놀라움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10년 전에 어떻게 그런 작품을 만들었지요?
"영화 ‘쥬라기공원'을 본 게 1993년이었어요. 스필버그의 팬이기도 했지만, 마음속에 저런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2008년 다큐프라임을 론칭하면서 ‘사자의 일생'처럼 공룡 시대로 가서 ‘한 공룡의 생로병사'를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그때까지 자연 다큐는 사자나 호랑이 등 맹수를 관찰한 게 대부분이었죠. 반면 저는 ‘사라진 시대’와 ‘사라진 생물'을 영상으로 부활시켜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어요. 그 시작이 공룡이었죠."
-사실 한반도가 거대 공룡들의 낙원이었다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땅의 역사라고 해도 보통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니 고구려나 고조선 정도까지만 가도 아득해지죠.
"고성이나 여수 등 남해안을 여행하다 보면 박물관 앞 바닷가에서 공룡 발자국을 너무 쉽게 볼 수 있어요. 한반도는 공룡들의 무도회장이라고 할 정도로 초식 공룡과 육식공룡이 풍부하게 어울려 살았죠. 그 발자국을 만져보면 느낌이 이상했어요(웃음). 8천만 년 전의 흔적이 손끝으로 전해진달까요."
‘한반도의 공룡'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당시 EBS 시청률의 세 배, 백만 부에 달한 ‘한반도의 공룡' 출판물, 40만 명이 넘게 다녀간 ‘한반도의 공룡 체험전’ 독일 RTL디즈니 방송사에 팔린 8만 유로라는 최고가 다큐멘터리 수출, 30여 개국이 넘는 국가가 ‘한반도의 공룡'을 앞다퉈 수입해갔다.
그야말로 킬러콘텐츠가 탄생한 것이다. 한상호는 그때부터 공룡이 가진 야생의 힘, 이야기의 힘에 끌려들어갔다.
-사람들은 공룡의 무엇에 그렇게 감동했을까요?
"저는 처음부터 갓 태어난 아기 공룡 ‘점박이’의 일생을 따라갔어요. 육식공룡이라도 새끼는 정글에서는 약자거든요. 수많은 위기를 지나 점박이가 마침내 사냥에 성공하자 엄마가 내쫓는 장면이 있어요. 점박이가 울면서 매달려도 엄마는 이젠 ‘네 길을 가라'고 매정하게 가죠. 그 장면에서 아이들이 다 울었대요. 자기가 엄마랑 헤어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안 거예요.
물론 잔인하죠. 약육강식이 지배하니까. 하지만 그게 어쩌면 진정한 교육학적인 가치가 있는 스토리텔링이었던 거예요. 요즘 부모들은 애써 밝은 이야기만 보여주려고 하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잖아요. 공룡의 성장기를 통해서 삶의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왜 하필 타르보사우루스죠? 대개 육식 공룡계의 슈퍼스타는 티라노사우루스인데요.
"우리 아이들이 한국의 공룡을 봤으면 했어요. 타르보사우루스는 우리한테 있을 법한 주인공입니다. 북미엔 티라노사우루스가 인기 있지만, 우리 영토에 거주한 공룡은 타르보사우루스예요. 몽골, 중국, 러시아 일대를 포함해서 서식한 육식 공룡이죠. 전남대학교 공룡연구소장 허민 박사님에게 자문을 구해 캐릭터와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
-사실 한국의 대표 공룡은 ‘둘리’였어요. 어릴 때 둘리를 보고 자랐는데, 최근엔 제 아이도 둘리를 보더군요. 점박이가 둘리처럼 롱런 캐릭터가 될 수 있을까요?
"‘둘리'는 김수정 선생님의 현실적인 가족 이야기예요. 세 들어 사는 주제에 주인을 무시하고, 애가 어른에게 헛소리도 곧잘 하지요(웃음). 어른과 아이가 동시에 좋아할 만 해요. 점박이는 사람들이 좀 더 깊이 감정 이입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점이 좋습니다. 서양사람들은 타자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존재로 생각해요. 거리를 두죠. BBC의 공룡 다큐도 3인칭으로 거리를 두고 있거든요."
-그래야 안전하니까요. 인간은 연약한 포유류입니다. 최상위 포식자의 이빨에 공포를 느끼는 건 당연하죠.
"하지만 동양은 전통적으로 도깨비와도 함께 놀고 씨름도 했어요. 타자의 문제를 좀 더 주체화해서 적극적으로 풀었죠. 공룡도 동물이니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로 제가 ‘점박이2’에서 하고 싶었던 건 영웅의 서사예요. 영웅의 탄생과 시련을 보면서 아버지와 아이가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길 바랐어요."
-어쨌든 인간처럼 슬픔과 소외, 분노를 리얼하게 연기하는 페이소스 강한 공룡을 보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어요.
"도전의 연속이었죠. 애니메이터들은 공룡이 눈과 입 주위 근육을 어떻게 사용해서 연기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죠.
-할리우드에서는 모션캡처를 사용하지 않나요? ‘혹성탈출'의 매력적인 고릴라 ‘시저'도 그렇게 창조됐고요.
"그렇죠. 디지털 센서를 배우의 몸에 부착해서 그 움직임을 촬영하는 기법이지요. 하지만 공룡은 몸의 구조가 달라 모션 캡처가 불가능해요. 애니메이터들에겐 암흑이죠. 결국 영화 ‘미스터 고'에서 작업했던 동물 배우의 도움을 받아 모든 장면을 실제 사람이 연기해서 찍은 후 애니메이터가 그것을 보고 그려 넣었어요.
이 상황엔 이런 표정을 짓는구나… 동물 배우의 연기 샘플이 정말 중요했어요. 가만히 바라보는 것도 미숙련 배우가 하는 것과 송강호가 하는 건 다르잖아요. 한국과는 달리 디즈니엔 오랜 전통이 있어요. 애니메이터들이 배우죠. 자기 연기를 보면서 자연스러운 표정과 근육을 만들어 내요."
-스스로 연기하는 화가로군요?
"그렇죠. 그렇지 않았다면 그토록 생생한 만화 캐릭터는 불가능했을 거예요. 한 애니메이터의 작업량도 하루에 1초예요. 하루에 10초를 만들어야 하는 우리나라 환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죠."
-우리나라도 디즈니의 외주를 받아 작업하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주로 TV 시리즈로 알고 있어요. 메인 영화는 인하우스의 고부가가치 기술력으로 제작한다고 들었어요. 애니메이터 배우들과의 긴밀한 소통이 그만큼 중요한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구심이 남습니다. ‘쥬라기공원'은 ‘인간이 과연 이 잔인한 포식자를 통제할 수 있는가’라는 과학기술의 윤리에 질문을 던지면서 이어지고 있어요. 공룡을 서사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리는 건 사실상 위험부담이 큰일입니다. 감정이입도 쉽지 않고요.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려면 그게 최선이었어요. 강한 이야기가 되려면 다큐가 아닌 ‘팩션’이 필요했어요. 이전과 같은 다큐로 가는 건 쉬운 길이예요. 어렵지만 더 힘든 길을 가보자, 감히 꿈꿀 수 없는 것에 도전해보자,하는 심리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방향이 전 세계적인 영상 트렌드입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곧 개봉될 ‘라이언 킹' 리메이크 예고편을 보여주었다. 2019년 버전의 ‘라이언킹’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것은 선으로 구현된 평면 애니메이션 아니라 동물이 연기하는 사실적인 극영화에 가까웠다.
"‘정글북'이나 ‘혹성탈출'을 보세요. 동물이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대예요. 이제 우리 영화도 그렇게 이동해야 할 때죠. 그게 필연적인 방향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상상한 걸 현실적으로 느끼고 싶어 해요. 그리고 상상력만 있으면 이제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의 시대가 왔어요."
지난 5년간 ‘점박이2’를 작업한 700명의 애니메이션 스태프가 그 노하우를 쌓았다고 했다. "이제 저희는 ‘쥬라기공원'처럼 사람과 디지털 크리처를 결합하는 기술도 가능합니다." 잔잔한 그의 눈동자에 일순 섬광이 일었다.
-‘쥬라기공원'처럼 ‘점박이'가 세계적인 공룡 프랜차이즈물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만들어야죠. ‘도라에몽'은 30년째 매년 극장판이 나오잖아요. 매년 이익을 거두는 훌륭한 문화 사업이죠. ‘점박이'도 10년째 이어져 왔어요.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매년 이어진다면 그걸 만든 영상 스태프들은 또 앞으로 10년 이상 일할 곳이 생기는 거죠. 정말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오타쿠 기질이 있습니까?
"저는 보편적인 사람입니다."
-집념이 강한 편인가요?
"모르겠습니다."
‘한반도의 공룡' 전에 그는 EBS에서 2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데뷔작인 ‘문자'는 중동 전지역과 루브르 박물관, 브리티시 뮤지엄을 돌며 쐐기 문자에서 알파벳에 이르는 여정을 담았다. 암호와 해독, CG와 미스터리 요소가 가미된 극적인 교양 인문 다큐로 그는 그해 삼성언론인상을 받았다.
두 번째 ‘마이크로의 세계'에서는 전자 현미경을 달아 동영상을 촬영하고 ‘매트릭스'나 자동차 충돌 실험에나 쓰던 초고속 촬영 기법을 사용했다. 당시엔 특수 장비도 없어 렌탈 회사에 사정해서 빌려 썼다. 전에 없던 아름다운 영상이 만들어졌다. 이후 그가 쓴 하이테크놀러지는 점차로 방송가에 보편화됐다.
-좌절할 때는 언제였나요?
"매 순간이 어려웠어요.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 가장 어려웠어요. 기술적으로 더 표현하고 싶어도 모든 게 다 돈이었지요. 2008년 제가 ‘한반도의 공룡'을 만들 때 교육부에서 지원받은 돈이 5억 6천만 원이었어요.
당시 BBC는 180억 원 예산으로 ‘공룡대탐험' 다큐를 만들었죠. 제 경쟁상대는 BBC인데, 제가 가진 예산으로는 국내 CG회사들이 다 고개를 저었어요. 그때 지금의 제작사 드림써치가 함께 해보자고 제안을 해와서 이후로 죽 협업하고 있어요. 다행히 공룡은 부가가치가 큰 사업이었어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동력은 무엇인가요?
"만들어야 한다는 것. 20년을 그냥 그렇게 살아왔어요. 애니메이터와 CG아티스트들은 큰 그림 안에서 소모품처럼 사용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전에 없던 일을 하면서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거예요. 돈은 많이 못 벌어도 함께 모여 꿈을 이뤄간다는 기쁨이 있었어요."
-별명이 있습니까?
"어릴 땐 영감이었어요(웃음). 거제도 출신인데 다른 애들은 밖에 나가 소도 키우고 나무도 베는데 전 책 보고 그림만 그렸어요. 아버지는 저더러 게으르다고 그러셨죠(웃음). 저는 제가 이렇게 집중해서 한 가지 일을 집요하게 될 줄 몰랐어요. 그래서 깨달았죠. 아, 사람들은 좋아하는 걸 시키면 되는구나(웃음)."
-구성원들은 당신을 뭐라고 하나요?
"어려운 사람이라고 해요(웃음). 보는 눈이 높아서 만족시키기 어렵다고요."
-경쟁상대는 BBC인가요?
"세계적인 지향점이 있으면 나아갈 힘이 생기잖아요(웃음). 지금 경쟁상대는 디즈니 픽사예요. 실력은 아직 부족해도 눈은 거기에 가 있겠다는 거죠(웃음). 저는 저랑 일했던 사람이 보상받고 잘 됐으면 좋겠어요."
-다음 경쟁 작품은 ‘라이언 킹'인가요?
"한국 영상산업의 경쟁상대죠. ‘라이언 킹'은."
-어떤 꿈을 꾸고 있죠?
"가능하면 계속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거예요. ‘문자'에서 ‘마이크로의 세계'로 그다음엔 ‘한반도의 공룡'으로 계속 가고 있어요. 공룡으로 와서는 다큐에서 극영화로, 그리고 2편으로 올라서는데 정말 큰 점프를 했어요. 얼마만큼 도약을 해야 할 지, 막막할 만큼 항상 높은 고지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렵지만 미래 테크놀러지의 끝까지 가고 싶어요."
스필버그와 제임스 캐머런이 갔던 길을 그도 가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그건 야망이라기보다는 여정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