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뛰어)! 포레스트! 런!"
1995년 아카데미 6개 부문을 휩쓴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 달리기에 재능이 있는 지적장애인 검프에게 뛰라고 소리치는 이는 미국 대학풋볼 전설의 명장 폴 브라이언트(1913~1983)다. 실제 역사에 가상 인물 검프를 영리하게 끼워넣은 영화 속에서 검프는 앨라배마 대학 풋볼 선수로 등장한다. 잘 달린 덕분에 백악관에도 초청돼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를 나눈다.
검프가 활약한 앨라배마 대학의 풋볼팀 '크림슨 타이드(자줏빛 물결)'는 앨라배마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멀고 먼 앨라배마 나의 고향은 그곳'으로 시작하는 '오! 수재너'의 고장 앨라배마주(州)는 1인당 평균 소득이 미국 최하위권인 시골 동네다. 당연히 메이저리그나 NFL(미 프로풋볼) 같은 4대 프로 스포츠팀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앨라배마의 스포츠 팬들은 아쉬울 게 없다. 전국 최강의 대학 풋볼팀이 있기 때문이다. 앨라배마는 전국적인 랭킹 시스템이 확립된 1936년 이후 역대 최다인 12차례 내셔널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실력은 곧 인기를 부른다. 인구 10만 도시 터스칼루사의 홈구장 브라이언트-데니 스타디움엔 매 경기 10만 관중이 들어찬다. 이 스타디움의 원정팀 라커룸 이름은 'The Fail Room'. '실패의 방'쯤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사실은 2008년 제임스 페일(Fail)이란 동문이 자신의 이름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 기부금을 내고 자기 이름을 붙인 것이다. 효험을 봤는지 그 이후 수많은 원정팀이 실패를 맛본 가운데 앨라배마는 2009년부터 9년 동안 다섯 번 전국 정상에 올랐다. 올해도 8일 오전 10시 클렘슨 대학과 CFP(칼리지 풋볼 플레이오프) 결승을 치른다.
최근 성공의 중심엔 닉 세이번(68) 감독이 있다. 2007년부터 팀을 맡은 세이번은 올해까지 4회 연속 결승 진출을 이끌며 앨라배마대를 전미 최고의 팀으로 올려놓았다.
미국 포천지는 작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리더 50인을 꼽으며 세이번을 12위에 올려놓았다. 포천은 "세이번은 성공을 위한 프로세스를 확립한 이후에도 주저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을 수용해 끊임없는 혁신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앨라배마의 전통적인 팀 컬러는 단단한 수비와 우직한 러싱 플레이. 부임 초반 이를 고수하던 세이번은 최근엔 트렌드에 맞게 발 빠른 쿼터백을 세워 적극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는 공격 전술로 성과를 내고 있다. 2018년 CFP 결승전에선 부진한 주전 쿼터백을 빼고 후반 들어 1학년 루키 쿼터백을 기용하는 깜짝 용병술로 우승을 일궈냈다. 자신이 흐름에 뒤처지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과감히 변화를 꾀한 리더십에 미국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세이번은 "나는 '지금까지 늘 이렇게 해왔다'란 말을 가장 싫어한다"고 했다.
10년 이상 미국 대학 풋볼을 자줏빛으로 물들인 세이번의 연봉은 125억원. 미국 프로·대학 스포츠를 통틀어 감독 최고 연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