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 정부를 상대로 새 전용 요트를 사 달라는 '로비'를 한 사실이 20여년 만에 알려졌다. 당시 로비는 실패했다.
버킹엄궁의 고위 간부가 국무조정실 관료에게 "정부가 새로운 '로열(Royal) 요트'를 마련해주면 여왕은 무척 반길 겁니다. 하지만 이런 요청이 외부에 새어나가면 곤란합니다"라고 쓴 메모가 최근 국립 문서저장고에서 발견됐다고 일간 더 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메모는 1995년 5월 영국 총리가 여왕의 전용 요트였던 '브리타니아〈사진〉'를 퇴역(退役)시키겠다고 밝힌 직후였다. 전용 요트가 없어지게 될 상황에 처한 여왕이 새 요트를 원했다는 것이다.
전용 요트에 대한 여왕의 사랑은 컸다. 브리타니아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즉위한 이듬해인 1953년 진수됐다. 길이 126m에 250명(승무원 25명 포함)을 태우고 당시로는 상당히 빠른 시속 40㎞로 달릴 수 있었다. 44년에 걸쳐 135국의 600개 항구를 방문했다. 항해 거리를 합치면 201만㎞에 달했다.
여왕은 브리타니아를 아꼈다. 연회장과 거실은 여왕의 취향을 반영해 꾸몄다. 배가 정박한 곳에서 여왕이 타고 다닐 롤스로이스 승용차도 배에 싣고 다녔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등 유명 인사들이 이곳에 초대받아 식사를 했다. 찰스 왕세자와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은 이 배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났다. 여왕은 "내가 정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은 이 배뿐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1997년 브리타니아 퇴역식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눈물을 흘렸다. 퇴역한 브리타니아는 영국 북부 에든버러에 전시돼 대중에 공개돼 있다. 배 안의 시계는 3시 1분에 맞춰져 있는데, 퇴역식을 한 날 여왕이 이 배를 떠난 시각이 오후 3시 1분이었다.
영국 정부는 브리타니아 퇴역 이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새로운 왕실의 호화 선박을 제작하는 것은 여론의 비판이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브리타니아호가 퇴역하기 직전 미국 가수 고(故) 마이클 잭슨이 배를 사들이겠다고 제안했지만 영국 왕실은 정중히 거절했다. 2017년 보수당 의원 50명이 '로열 요트' 제작을 위한 특별 복권을 발행해 1억2000만파운드(약 1700억원)를 마련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영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홍보 대사'로서 역할을 하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반대가 많아 논의로만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