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 드레스를 입은 풍만한 여인 곁에 턱시도 차림의 신사가 서 있다. 말끔히 면도한 얼굴에 점잖은 보타이까지. 30년도 더 된 낡은 영상 속에서 듀엣으로 '바르셀로나'를 부르는 남자는 록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다.

발레리노처럼 딱 붙는 쫄쫄이 의상을 입고 무대를 누빈 이 분방한 로커가 유독 수줍은 모습을 보인 사람은 딱 한 명. 바로 스페인 출신 전설의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였다. 다른 멤버들이 록 공연을 보러갈 때, 파바로티 오페라를 보러 갈 만큼 소문난 오페라광(狂)이었던 프레디는 1983년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가면무도회' 아리아를 부르는 카바예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틈만 나면 '몽시(카바예 애칭)'와 노래하고 싶다고 피력했고, 1986년 스페인 투어 도중 TV에 출연해 그녀를 꼭 만나고 싶다고 호소했다.

1987년 2월, 마침내 카바예의 고향인 바르셀로나에서 디바와 마주했다. 프레디는 "당신을 위해 썼다"며 '엑서사이즈 인 프리 러브(Exercises in Free Love)'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열세 살 연상인 카바예는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프레디의 모습에 감동받아 금세 친구가 됐다. 5년 뒤 열릴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위해 노래도 만들어 부르자고 약속했다. 프레디가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여 완성한 '바르셀로나'였다.

1988년 10월 8일 축제에서 함께‘바르셀로나’를 부르는 프레디 머큐리(왼쪽)와 몽세라 카바예.

오페라와 팝이 묘하게 뒤섞인 이 노래는 오케스트라 반주로 시작한다. 바리톤 음역인 프레디와 소프라노인 카바예가 각각 솔로 부분을 부르다 이중창을 한다. 훗날 카바예는 "'바르셀로나'를 작곡할 때 이미 그의 병(에이즈)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얼마 못 살 거란 걸 알고 있었고, 그 노래에 마지막 인사를 담고 싶어했어요."

둘의 아름다운 '케미' 덕분에 '바르셀로나'는 각종 차트를 석권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988년 10월 바르셀로나의 한 음악축제에서 둘이 함께 부르기도 했다. 프레디 생애 마지막 라이브 무대였다. 그로부터 3년 뒤, 프레디의 장례식장엔 카바예가 부르는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의 아리아 '사랑은 장밋빛 날개를 타고'가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