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게해(海) 북동쪽에 있는 그리스의 섬 레스보스(Lesbos)는 제주도의 10분의 9 정도 크기에 10만명이 산다. 주민 대부분이 농·어업에 종사하고 한 해 4만~5만명의 방문객이 찾는 '특이할 것 없는' 이 섬이 최근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들의 '성지(聖地)'로 떠올랐다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했다.
섬 중에서도 서쪽 끝 바닷가 외딴 마을인 에레소스(Eresos)는 레즈비언들의 '필수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주민 수가 1500여 명인 이 마을엔 레즈비언 전용 주점만 3곳이 성업 중이다. 주민 조안나 사바씨는 "10여 년 전에는 한 해 1000명 정도 레즈비언이 찾아왔는데, 최근엔 3000~4000여 명이 방문한다"며 "해마다 찾는 단골이 늘면서 매년 9월 레즈비언 축제까지 열고 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레스보스섬이 뜬 것은 에레소스 마을이 최초의 여성 서정시인인 사포의 고향이라는 이야기가 퍼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설에 따르면 2600년 전 사포는 다른 여성들과 함께 이곳에 어린 소녀들을 모아 시를 가르치는 교육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공동체에 동성애가 행해진다는 소문이 퍼졌고, 이후 유럽 대륙에는 "레스보스 주민(Lesbian)은 동성애자"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여성 동성애자를 뜻하는 '레즈비언'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유래했다.
섬 주민들도 한때는 여성 동성애자의 발상지라는 소문이 탐탁지 않았다. 10여 년 전에는 일부 주민이 "레즈비언은 우리 섬의 주민을 일컫는 말인데, 마치 동성애자를 뜻하는 것처럼 사용된다"며 여성단체들이 이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관광 수입이 늘자 주민들 분위기도 달라졌다. 레즈비언 전용 주점을 운영하는 릴리언 옌슨씨는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이라는 유럽에서도 동성애자 커플이 맘 편히 갈 수 있는 곳이 부족하니 우리 같은 섬을 찾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