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는 겨울의 난로다. 서울 청담동 ‘라그랑자트’의 케이크는 먹는 사람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버터를 잔뜩 넣어 만든 과자류도 좋지만 다양한 과일을 넣어 만든 케이크도 일품이다.

생일은 어머니가 케이크를 먹는 거의 유일한 날이었다. "생일에는 꼭 케이크를 사야지" 어머니는 주장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사 마시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어머니에게 케이크는 특별한 날의 상징이었다. 나도 그랬다. 어릴 적 빵집 진열장에서 케이크를 골라 집으로 가져오는 길이면 온몸에 미열이 돌았다. 하얗고 작은 케이크 하나, 촛불 하나로 밤을 밝히면 오랜 노동과 영하의 바람에 거칠어진 어머니의 얼굴에도 웃음이 고였다. 시간이 흘러 경제 수준이 올라가고 외식 경험도 풍부해짐에 따라 디저트도 전문화되었다. 그리고 이제 서울 강남 골목골목마다 섬세하게 세공된 미니 케이크를 파는 디저트숍이 여럿 생겼다.

삼성동 '리틀앤머치'는 이런 디저트숍 중 가장 '핫'한 곳으로 꼽힌다. 강남구청역 뒷골목에 3~4층 높이 정도의 낮은 건물들이 비좁게 선 골목에 자리한 이 집은 주말이면 늘 앉을 곳이 없다. 디저트라는 장르 특성 덕분인지 손님 90% 이상은 여성이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며 앉아 입을 작게 열어 밝게 빛나는 케이크를 나눠 먹는다. 앞에 놓인 것은 대개 크림, 초콜릿, 젤라틴 등으로 만든 무스(mousse) 케이크다. 특히 만화 속 배경화면처럼 핑크색으로 빛나는 '스트로베리치즈'는 속에 든 딸기퓨레와 치즈, 그리고 바닥의 바삭한 과자가 한데 어우러져 봄날 오후의 낮잠처럼 느긋하고 부드러운 달콤함을 이끌어낸다.

삼성동에서 한남동으로 자리를 옮긴 '제이엘디저트바'는 조금 더 박력이 넘친다. 리틀앤머치가 모차르트라면 이곳은 베토벤에 가깝다. 바에 앉아 음식처럼 코스로 디저트를 먹노라면 소나타로 시작해 론도로 막을 내리는 교향곡을 듣는 듯하다. 더욱이 낭만주의시대 음악처럼 단맛·짠맛 같은 맛의 대조, 버터와 소금으로 이끌어낸 맛의 강약에 초점을 맞춰 색이 선명하다. 그중 버터를 거의 욱여넣어 만든 '애플따땡'은 부드럽고 달달한 사과와 소금맛이 쨍하게 발산되는 캐러멜이 충돌하듯 부딪쳐 경쾌하고 묵직한 단맛을 품고 있다. 입안에 남는 강한 여운에는 몸을 뜨겁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청담동 좁은 골목에 새침한 고양이처럼 웅크린 '라그랑자트'의 케이크에는 기하학적인 균형과 색과 선으로 이뤄진 회화 같은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그 아름다움의 정점에는 새하얀 가게와 화가 조르주 쇠라의 그림 '라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었다는 케이크, 그리고 늘 그곳을 지키는 두 여자가 있다. 둘은 얌전한 작은 동물처럼 그곳을 조용히 지키며 손님을 공손히 맞는다. 이 집은 버터를 잔뜩 넣어 만든 과자류도 좋지만 역시 케이크가 주력이다. 고소한 피스타치오 풍미가 주를 이루는 '파리 그랑자트', 부끄러움을 모르는 남녀가 뒤엉킨 남국(南國)처럼 망고, 패션프루트, 파인애플같이 산미와 당도가 높은 열대 과일로 맛을 낸 '르솔레이' 같은 케이크들은 모두 맛의 개성과 균형을 줄타기하듯 한데 모아냈다. 분명 쉽게 혀를 지치게 하는 단 음식인데 아무리 먹어도 지치지 않았다. 그리고 전원에서 맞는 늦가을의 아늑한 정취를 밤 특유의 구수한 맛에 녹여낸 '몽블랑'을 마침내 먹었을 때 아버지, 어머니라는 오래된 단어가 떠올랐다. '사랑한다'는 말처럼 모난 곳 하나 없는 맛이었다. 생일이 아니더라도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안겨주고 싶은 맛이었다. 독하고 차가운 세상을 견뎌온 그들에게 꼭 돌려주고 싶은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