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전 인도에서 벌어진 2만명이 넘는 시크교도 대학살 사건의 주범 중 한 명인 인도국민회의 소속 사잔 쿠마르(73·사진) 전 의원이 지난 17일(현지 시각) 인도 델리 고등법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학살 책임을 지고 실형을 받은 최고위 인사다. 이날 고등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던 5년전 1심 판결을 뒤집었다. 법원은 쿠마르가 지지자들을 이끌고 시크교도를 찾아다니며 무차별 살해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1984년 사건은) 반인륜적 범죄이며 대학살(genocide)"이라고 했다.
비극은 인도 북부 펀자브주(州)에 있는 시크교도 성전(聖殿)인 황금사원에서 시작됐다. 시크교는 15세기쯤 힌두교에서 갈라져 나온 종교다. 14억 인도 인구 중 2% 정도가 신자다. 흔히 '인도인' 하면 떠오르는 터번과 덥수룩한 수염은 사실 시크교도의 상징이다.
시크교도는 이슬람 제국인 무굴제국의 지배에 맞섰고 영국 식민지 때는 독립전쟁을 했다. 독립한 이후에도 과격 신자들은 시크교 독립국가를 세우자고 주장했고, 이 중 일부가 1984년 6월 자신들의 성전인 황금사원을 점거했다. 인디라 간디 당시 총리는 탱크를 동원해 강경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시크교도와 인도군을 합해 500여 명이 숨졌다.
탱크의 성전 진입에 시크교도들은 분노했다. 당시 간디 총리의 경호원 중에서도 시크교도들이 포함돼 있었다. 간디 총리의 측근들은 안전을 우려해 경호원 교체를 건의했으나 간디 총리는 "그들은 시크교 창시자보다 나를 더 섬긴다"며 무시했다. 그러나 사원 무력 진압 4개월 후 시크교도 경호원 두 사람은 간디 총리가 방탄조끼를 벗은 틈을 타 기관총을 난사해 암살했다. 이후 피바람이 불었다. 격분한 힌두교도들이 시크교도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암살 사건 후 사흘 만에 수도 뉴델리에서만 2700여 명, 인도 전역에서 2만명 넘는 시크교도가 학살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집권당인 인도국민회의 지도자들이 학살을 선동했고 경찰은 이를 방조했다. 쿠마르 전 의원도 이를 선동한 정치 지도자였다. 하지만 책임자 처벌은 수십 년간 이뤄지지 않았다. 암살당한 인디라 간디 총리의 아들인 라지브 간디도 총리를 지냈다. 현재 인도국민회의를 이끄는 라훌 간디는 그의 손자다.
현 집권당인 인도인민당은 판결을 반겼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18일 "(인도국민회의가 집권하던) 4년 전만 해도 그 누구도 인도국민회의 지도부가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희생자들이 정의를 쟁취했다"고 했다. 쿠마르 전 의원 측은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할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