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용 정치부 기자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박항서 감독의 지난 15일 스즈키컵 우승 소감은 외교가에도 큰 화제였다. "베트남 국민이 저를 사랑해주신 만큼 제 조국 대한민국도 사랑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의 한마디가 큰 울림을 주며 '외교관 100명이 못할 일을 해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일주일 전 국내에선 고위 외교관이 베트남에 외교 결례를 범하는 일이 있었다. 이 외교관은 일부 기자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독살 사건으로 북한 당국이 베트남 정부에 비공식 사과했다"고 했다. 북한 국적 피의자들이 베트남 여성을 사주해 범행을 저지른 데 대해 북한이 사과했다는 내용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양국 정부 간 비공개 대화를 제삼자인 우리 외교관이 공개한 것이다. 한 전직 대사는 "베트남에서 강력 유감을 표해도 할 말이 없는 비상식적 발언"이라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베트남 정부는 "그런 정보가 없다"고 했다.

지난주 재외공관장 회의 기간 열린 주요 대사 간담회는 우리 외교의 난맥상(亂脈相)을 여실히 보여줬다. 미·중·일·러·UN 등 5강(强) 대사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공관장 회의 때 간담회를 갖고 주재 성과와 외교 현안을 설명하는 게 관례다. 그러나 노영민 주중 대사, 조태열 주UN 대사는 개인 사정을 들어 거부했다. 당초 간담회를 고사하려 했던 조윤제 주미 대사, 이수훈 주일 대사는 정부가 그간 해온 뻔한 얘기만 반복했다. 조 대사는 "한·미는 특정 사안에 다른 시각도 있지만 잘 공조하고 있다"고 했고, 이 대사는 "한·일 간 어려움이 많지만 교류 협력은 강화해야 한다"고만 했다.

국민 앞에 자랑할 외교 성과는 없었다. 실제 올해 성적표는 어땠나. 한·미 관계는 대북 제재 문제로 연중 불협화음이 불거졌다. 중·일이 밀착하는 동안 한·중 관계는 나아진 게 없고, 한·일 관계는 1965년 국교 정상화 후 최악에 빠졌다.

한국 외교사에 남을 부끄러운 장면도 많았다. 노영민 대사는 올 6월 김정은 방중 기간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다 논란이 됐다. 지난달 '김정은 11월 방러 유력'을 언급했던 우윤근 주러 대사는 이번 간담회에선 머쓱하게 "김정은 연내 방러가 어렵다"고 했다. 그는 간담회 직후 청와대 특별감찰반 사건으로 자신의 금품 수수 의혹이 제기되자 17일 고향 광양에서 열기로 했던 특강까지 취소하고 황급히 출국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이 대사들을 임명하며 "미·중·일·러는 우리 외교에 근간이 되는 나라들인데, 모두 (비외교관 출신인) 특임 대사로 임명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특임 대사'란 말로 포장된 '낙하산 대사' 인선의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는 그대로다. 박항서 감독처럼 주재국에 사랑받는 외교관은 못 될지언정 750만 재외 동포에 부끄러운 외교관은 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