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루된 '러시아 스캔들'의 먹구름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미 정계와 법조계에선 현직 대통령의 외국과의 공모를 통한 반역, 사생활 폭로에 대한 입막음 시도 등이 뒤섞인 이 희대의 대선 부정(不正) 의혹을 두고 "트럼프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는 말도 다시 나오고 있다. 독립전쟁으로 탄생한 미국에서 대통령이 적국(敵國)과 내통해 선거에 개입하도록 했다는 것은 역린을 건드린 일로, 그만큼 치열한 법리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당시 비위에 관한 수사 기록 두 건이 법원에 제출됐다. 2년 가까이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해온 로버트 뮬러 특검이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수사 내용과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날 뉴욕 연방검찰도 트럼프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여성 2명에게 '입막음 돈'을 준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에 대한 수사 기록을 뉴욕 법원에 제출했다.
먼저 트럼프의 해결사(fixer)로 불렸던 코언 변호사는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와 플레이보이 모델 캐런 맥두걸에게 2016년 대선 당시 '10년 전 트럼프와의 성관계 사실을 발설 말라'며 준 13만달러(약 1억4000만원)·15만달러(약 1억7000만원)의 돈이 트럼프의 직접 지시로 지급됐다는 사실을 자백했다. 코언은 정치자금법과 금융법 위반, 세금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는 즉각 '대통령의 반역 행위나 뇌물수수, 중대범죄·경범죄에 대해 탄핵을 추진할 수 있다'는 헌법 조항을 다시 소환시켰다. 선거자금법 등 위반만으로 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없지만, 의회의 정치적 탄핵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1972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 은폐 의혹을 폭로한 존 딘 전 백악관 법률고문은 8일 CNN에 "하원이 탄핵 절차를 개시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의 제럴드 내들러 하원 법사위원장 내정자도 9일 "탄핵 대상이 될 만한(impeachable) 범죄"라고 말했다.
뮬러 특검이 막바지에 접어들며 관련 보도도 쏟아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9일 "수사 기록상 트럼프 측과 러시아의 접촉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광범위했다"며 2016년 당시 트럼프의 가족과 친구, 지인들이 최소 14명의 러시아 정보기관 관계자와 접촉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대사부터 부총리, 가수, 역도 선수까지 트럼프 측에 선거 유세나 부동산 사업에 대한 도움을 주겠다고 하거나 힐러리 클린턴 후보 관련 정보를 들고 접근했다는 것이다.
앞서 특검은 "트럼프는 2016년 대선까지도 모스크바에 100층짜리 '트럼프 타워'를 세우려 했고, 러시아 인사들이 투자하겠다면서 줄을 댔다"는 코언 변호사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폴 매너포트 전 트럼프 캠프 선대본부장,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등 핵심 측근들도 러시아와 거래 혐의로 줄줄이 기소돼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트럼프-러시아 간 접촉의 양(量)만으론 공모·반역 혐의가 입증되지는 않는다. 특검은 '트럼프 장남이 러시아의 민주당 해킹 계획을 사전에 알았다'거나 '트럼프가 FBI 등 정부기관을 압박해 러시아와 내통 증거를 은폐하려 했다' 등 다양한 커넥션을 발굴해냈지만, '트럼프가 러시아에 민주당 해킹이나 가짜 뉴스 유포 등을 직접 지시했다'는 결정적 물증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통령 본인을 직접 조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검 인사권을 법무장관과 대통령이 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을 전후해 뮬러 특검을 비난하는 트위터를 왕창 올렸다. 그는 "완전한 마녀사냥"이라면서 특검 관계자들에게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냈고, "러시아만 아니었으면 내 지지율이 75%는 됐을 것"이라고도 했다. 공화당도 "실수가 과도하게 형사처벌돼선 안 된다"(랜드 폴 상원의원)고 맞서는 등 일단 대통령을 엄호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이 실제 탄핵에 돌입하기 어렵다는 계산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