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은 강간을 당한 것처럼 수치스러웠어요."

동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동쪽에 있는 인도양 섬 잔지바르의 한 공립병원. 의사가 허리를 숙인 한 흑인 남성의 엉덩이를 벌려 항문을 들여다본다. 옆에는 경찰관이 서 있다. 동성애자 여부를 판별하는 항문 검사 기록을 의사가 조작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해서다.

이 남성은 게이(남성 동성애자) 술집에서 생일파티를 하다 동성애자로 의심된다는 이유 때문에 경찰에 체포됐다. 병원 검사에서 동성애자라는 ‘진단’을 받으면 수감된다.

국제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지난 3일 준자치주 잔지바르섬에서 남성 10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이들은 섬의 퐁웨비치에서 파티를 하고 있었는데, 경찰이 들이닥쳐 게이로 의심된다며 이들을 체포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12월부터 잔지바르섬의 동성애자 대다수는 1년여간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잔지바르는 게이 또는 양성애자였던 것으로 알려진 프레디 머큐리(록밴드 퀸의 보컬리스트)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탄자니아에서 당국이 대대적인 게이 색출에 나서 국제사회의 비판이 커지고 있다. 탄자니아 정부는 게이 추적이 지방정부 정치인들의 개인적 의견일 뿐이라며 거리를 뒀지만, 이번 단속의 배후에 존 마구풀리 대통령이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탄자니아 LGBT 인권단체인 ‘탄자니아 LGBT 보이스’의 활동가가 “이렇게 태어났다”고 적힌 무지개색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무지개색은 성소수자를 상징한다.

◇ 지방 당국 "게이 이름 제보하라"

탄자니아의 옛 수도인 동부 항구도시 다르에스살람에서는 지난 5일부터 게이를 포함한 성소수자를 찾아내는 당국 태스크포스가 활동을 시작했다. 앞서 폴 마콘다 다르에스살람 커미셔너(장관급)는 지난달 29일 성소수자를 뜻하는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를 추적하는 정부 태스크포스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그는 "다르에스살람에 게이가 너무 많고 이들이 온라인 성매매를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시민에게 게이로 추정되는 사람의 이름을 경찰에 제보하라고 촉구했다.

태스크포스는 소셜미디어와 전화를 통해 2~3주간 5700건 이상 제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이 100여명의 신원도 확보했다.

마콘다는 탄자니아의 대표적 반(反)LGBT 정치인이다. 그는 2016년에도 게이뿐 아니라 그와 연관된 모든 사람을 체포하겠다고 선언했다. 국제적으로 비판 여론이 커지자 그는 "신을 분노하게 하는 것보다는 다른 나라들을 화나게 하는 게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동부 탄자니아의 동쪽 해안에 있는 다르에스살람과 동쪽 섬 잔지바르에서 게이 색출이 이뤄지고 있다.

◇ ‘자연의 섭리 반하는 성행위’ 남성 최고 징역 30년형

마콘다는 마구풀리 대통령의 ‘충성스런 동맹군’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대통령을 대신해 전면에 나섰을 거란 관측이 나왔다. ‘시작한 일은 끝을 본다’는 평가를 받으며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은 마구풀리는 2015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마구풀리 대통령은 동성애 혐오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왔다. 지난해 그는 "소들도 동성애를 비난해야 하며 LGBT 활동가들을 추방하거나 체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부터 성소수자에 대한 국내외 지원을 끊는 등 압력을 행사했다.

탄자니아 정부는 동성애를 막는 것이 에이즈(AIDS)를 일으키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확산을 예방하는 길이라고 본다. 당국은 2016년 7월 동성 항문 성교에 쓰이는 윤활제 수입과 판매를 금지했다. 성매매 종사자와 성소수자에게 HIV 검사와 치료를 해주는 의료센터 40곳을 폐쇄하기도 했다.

탄자니아에서 남성간 동성애는 불법이다.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성행위’를 하는 남성을 최고 30년 징역형에 처한다. 탄자니아 본토법에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에 대한 조항은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다만 잔지바르에서는 레즈비언 결혼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탄자니아는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다. 미국 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의 2007년 조사에서 탄자니아인 95%는 동성애에 거부감이 든다고 답했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시내 모습.

◇ 국제사회 "마녀사냥" 우려

국제사회에서는 탄자니아의 게이 탄압에 대한 우려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5일 주EU 탄자니아 대사를 불러 LGBT 인권 침해에 대해 항의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탄자니아의 게이 단속은 마녀사냥이 될 수 있고 LGBT에 대한 폭력과 협박, 따돌림과 괴롭힘 등 차별을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국제앰네스티의 후안 니야뉴키 동아프리카지부장은 "게이 단속 전담팀을 꾸린다는 발상은 동성애자에 대한 증오심을 자극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