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페이스북·넷플릭스 등 글로벌 정보통신(ICT) 기업들이 국내에서 매출은 올리되 세금은 내지 않는 것을 방지하고, 국내 기업들과의 역차별을 해소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여러 법안들이 국회에 발의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서버를 국내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법안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은 통상 마찰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개방이 아닌 폐쇄라는 디지털 역행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이와 관련한 토론회를 오는 28일 개최할 계획이다.

◇구글 등 글로벌ICT 규제 나서나…팔 걷어붙인 국회
글로벌 ICT기업들이 국내에서 연간 수조원의 매출을 거두면서 과세 의무 등을 지지 않는다는 지적은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특히 규제에서 자유로운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 국내기업들은 역차별을 받는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 5조원의 매출을 거두는 것으로 추정되는 구글이 네이버의 20분의 1수준인 200억원가량의 세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된 바 있다. 현재 국회에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여러 법안들이 발의돼있다.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

대표적인 게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이 지난달 29일 대표 발의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이는 일정규모 이상의 정보통신제공사업자의 국내 서버설치 등 기술적 조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지난해 페이스북이 KT와의 망사용료 분담과 관련된 분쟁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콘텐츠 접속경로를 해외로 변경해 국내 이용자들에게 불편을 준 데 따른 조치다. 더불어 서버설치 지역을 고정사업장으로 볼 수 있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유권해석에 따라 국내에 서버 설치를 의무화(서버 현지화)해 정당한 세금을 징수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됐다.

변 의원 외에도 민주당의 여러 의원들은 ‘논란의 구글세, 해외사업자 세금 제대로 내고 있나’ 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해외 사업자들에 대한 과세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당 차원에서도 관련 보고서를 내면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글로벌 ICT기업들의 인터넷 광고, 클라우드 컴퓨팅, 공유경제 서비스, 온라인투온라인(O2O)서비스 등을 통한 수익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매기는 내용을 담은 ‘부가가치세법 일부개정안’도 발의돼 있다. 바른미래당 박선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현행법상 과세 대상으로 분류되는 ‘전자적 용역’에 빠져있는 인터넷 광고 등을 과세의 범주에 넣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 인터넷 광고 등을 주수입원으로 하는 글로벌 ICT기업에 제대로 된 과세를 하겠다는 취지다.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이른바 ‘구글세’ 도입 등 글로벌 ICT기업에 대한 과세와 규제를 통해 역차별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여야 간 큰 이견이 없다"며 "해외 사례를 살펴봐도 (과세 등의) 실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유럽연합(EU)은 글로벌 기업들이 자국에서 벌어들인 매출의 3%를 세율로 책정하는 이른바 ‘디지털세’ 추진과 관련해 논의를 진행 중이고, 영국은 2020년부터 연매출 5억파운드(약 7400억원) 이상의 글로벌 기업이 영국으로부터 벌어들인 매출의 2%를 세금으로 내게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통상 마찰·기업 위축…고개드는 우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회가 해외ICT 기업의 조세 형평을 이유로 새로운 규제를 양산하고 있다"며 우려섞인 시각을 내놓고 있다.

가장 큰 우려는 통상 마찰 가능성이다. 서버 현지화 법안 등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통상 관련 전문가는 "글로벌 ICT기업 다수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국내에 서버 설치를 의무화 하는 법안이 통과되면 한미FTA상 현지주재 조항 및 내국민 대우 조항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활동의 자율성이 침해되고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ICT기업들은 이 같은 과세와 규제가 일자리 창출을 방해할뿐더러, 기술 혁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과세와 규제로 인해 글로벌 ICT기업들이 국내에서 서비스를 아예 제공하지 않거나, 한국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로 인해 스타트업 등 국내 사업자들도 좀 더 값싼 해외 클라우드 컴퓨터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서버 현지화 법안의 경우 단순한 데이터 현지화를 넘어 광범위한 트래픽 현지화가 예상된다는 우려도 있다. 한 ICT업계 관계자는 "모든 서비스 제공을 위한 서버를 국내에 두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국가에 의한 감시와 검열이 훨씬 더 쉬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 자유·개방·공유를 강조하는 시민단체 오픈넷 관계자는 "국내 서버 설치를 강제하는 나라는 극소수의 공산주의 국가나 동남아 일부 국가밖에 없다"며 "인터넷 이용자들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주한 미국대사관 등이 28일 개최하는 서버 현지화 법 관련 토론회 포스터.

이러한 우려들 속에서 서버 현지화 등의 본격 시행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는 게 업계와 정치권의 중론이다. 우리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외교·통상 등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바로 시행은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 유럽과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이와 관련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지만, 미국은 "미국 기업에 대한 불공정한 세금 제안"(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달 30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이 논의가 테이블 위에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한편, 주한미국대사관과 고려대 미국법센터, 사단법인 오픈넷은 28일 고려대에서 이와 관련한 토론회를 연다. ‘국경없는 인터넷 속에서 디지털주권 지키기’란 제목의 이 토론회에서는 서버 현지화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해당 토론회에는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조슈아 멜처 선임연구원이 발제를 맡고, 주디스 리히텐베르크 글로벌 네트워크 이니셔티브 사무총장, 조장래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상무, 박훤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