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된다|루트 클뤼거 지음|최성만 옮김|문학동네|384쪽|1만5000원

'가스실의 고통 속에서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밟고 오른다. 산처럼 쌓인 시체 더미를 보면 남자들 시체는 늘 위에, 여성과 아이들 시체는 맨 아래에 있었다.'

1931년에 태어나 나치가 지배한 암흑 같은 유년기 시절을 보낸 저자가 반세기 만에 기억의 조각을 끄집어 냈다. 유대인 피해자 중에서도 가장 바닥에 깔려야 했던 여성, 그리고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서술한 증언 문학이다.

피해자에 관한 통념을 깨뜨리는 일상적 경험들을 기록한다. 어머니와 함께 전차를 타고 가던 때였다. 누군가가 어린 소녀(저자)의 손에 오렌지를 쥐여줬다. 동정심을 표하고 싶었던 낯선 어른은 유대인 별을 단 소녀를 내려다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자는 이런 동냥이 "달갑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호의를 베푸는 건 약자의 처지를 바꾸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열한 살에 끌려갔던 수용소 생활은 치욕스러웠다. 그곳에서 여자들은 가장 값싸고 저급한 노동력이었다. 숲을 개간하고 철도 레일을 나르다가도 민간인의 집에 끌려가 잡다한 일을 해야 했다. 수용소의 여성들은 아무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

끔찍한 현실은 지금도 이어진다. 뮌헨에 몰려드는 관광객들은 마리엔 광장에서 아름다운 종소리를 듣고 수용소에 가서 막사들을 둘러본다. '이제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선 안 돼'라며 묵념한다. 그들이 위로하는 것은 죽은 자들일까 아니면 그들이 갖고 있는 불편한 마음일까. 강제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의 일부는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