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심장 '자유총연맹'
잇단 성추문, 어설픈 처리
피해자 "격리"요구에 "머리 모자라냐"
상위기관 행안부에 보고도 안 해

국내 보수단체의 상징인 자유총연맹(자총)이 잇단 성추문으로 술렁이고 있다. 공익근무요원이 ‘몰카’ 촬영한 것이 적발됐지만, 연맹 측은 피해자 측을 도리어 나무랐다. 간부 사원의 ‘성희롱’의혹도 두 건이나 제기됐지만, 징계에 나서지 않고 있다.

그래픽=정다운 디자이너

공익근무요원이 몰카 촬영
23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자총에서 근무했던 나모(29)씨가 지난 9월 여자화장실에 잠입한 뒤, 칸막이 너머로 휴대전화를 넘겨 올리는 수법으로 몰카 촬영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사무실 계단에서도 앞선 여성들의 신체 일부를 촬영한 혐의도 받는다. 그의 휴대전화에서 몰카 촬영물이 나왔기 때문에 혐의 입증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피해자에는 자총 여직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경찰은 나씨를 입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동시에 경찰 관계자는 자총 측에 "몰카 피해자를 가해자와 마주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자총 측에 요청했다. 그러나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자총 관계자는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공익근무요원을 전출하는 등의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아 대처가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②몰카범 정상근무…항의하자 "머리 모자라냐"
한동안 두 사람은 업무 때문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만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난 9월 27일, 몰카 혐의로 붙잡힌 나씨는 피해자에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총 측은 공익요원이 경찰에 적발된 지 열흘이 지나도록 병무청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는 가해자 격리를 요구하는 직원들에게 도리어 "머리가 좀 모자란 것 아니냐" "(성폭력 방지교육 같은) 요식행위는 해서 뭐하느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내부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김평환 사무총장은 "아무 것도 말할 게 없으니 홍보실에 문의하라"고 말한 뒤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공익요원 나씨는 ‘복무 중단’ 상태로, 여전히 자총 소속으로 등재된 상태다.

③다른 간부도 성추행 의혹
자총의 성폭력 의혹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성폭력이 벌어졌을 때 징계권을 행사하는 행정본부장 유모(54)씨도 성추행 의혹에 휘말린 상태다. 지난 3월 노래방 회식에서 유씨가 부하 여직원의 허벅지를 쓰다듬으면서 "내가 아들이 있었다면 며느리 삼았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게 피해자 주장이다. 이 여직원은 지난 4월 퇴사했다.

성추행 의혹은 현재 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유씨는 직위 해제됐다. 자총 관계자는 "유 본부장은 조직 내 알력 다툼 때문에 자신이 음해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할 말 없다. 홍보실로 연락하라"고 했다.

또 다른 간부는 부하직원에 "관심 있다" 심야카톡
지난 여름에는 또 다른 간부 김모(39)씨가 부하 여직원에게 사적인 만남을 수 차례 요구했다. 자총 감사 결과 김씨는 지난 8월, 새벽에 부하 여직원에게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취지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메시지를 받은 부하 여직원은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이후에도 그는 "내가 대시(구애)해서 넘어오지 않는 여자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피해자는 "거부했음에도 자신의 지위를 활용, 교제를 강요한 것은 성희롱"이라는 입장이다.

대학생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씨도 지난 대선에서 '문 캠프'에서 일하다, 지난 4월 자총에 간부로 들어왔다.
김씨는 성희롱 의혹 이후 현재 퇴사한 상태다. 그는 "괜히 논란만 키우는 것 같아서 사표를 냈지만 성희롱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허위사실(성희롱 의혹)을 유포한 사람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⑤가해자 비호 의혹 사무총장 "할 말 없다"
피해자들은 "성폭력을 처리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 사무총장이 일부 가해자를 감싸고 돈다는 것이다.

성추행 의혹으로 직위 해제된 전 행정본부장 유씨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 특히 그렇다는 것이다. 유씨가 직위해제 된 이후, 신임 행정본부장으로 취임한 신모(58)씨는 가해자 징계를 요구했다. 그러자 김 사무총장은 "당신은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며 신씨를 도리어 경질했다고 한다. 김 사무총장은 유씨에 대해 감사를 진행한 직원들에게는 ‘시말서’를 쓰게 했다고 한다.

김 사무총장은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의 통화에서 "홍보실에 문의하라"고 했고, 홍보실 관계자는 "내부 사안, 인사발령 정보를 외부에 공개할 의무가 없다"면서 반론을 거부했다. 기자가 수 차례 사무실을 찾아가고, 10여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서울 중구 장충동 한국자유총연맹 본부.

◇親文이 장악한 '보수 심장' 자유총연맹
자총은 행정안전부 산하 관변(官邊)단체다. 자총은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목적 아래 1954년 아시아민족반공연맹 한국지부로 출범해 1964년 한국반공연맹으로 개편됐고, 1989년 한국자유총연맹으로 이름을 바꿨다. 전국에 17개 지부·3389개 분회, 해외에 30개 지부가 있고 한 해 운영비가 200억원에 달한다. 자총 명부에 등록된 회원은 350만명, 내부 전산망에 등록된 회원은 80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 평화통일 추구가 설립목적으로 한때 '보수의 심장'이라 불린 단체다.
김평환 사무총장은 지난 6월 임시총회에서 임명됐다. 검찰 행정직 공무원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지난 대선 당시에는 문캠프에서 활약했다.

자총은 상위기관인 행정안전부에 잇단 성추문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자총 측은 "내부 문제가 있으면 자체 감사, 징계 절차를 모두 마무리하고 보고하는 게 맞는다"고 설명했다.

자총을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 행정안전부 관계자도 "관련 사안을 보고받은 적이 없다"며 "행정안전부에 포괄적인 감독 권한이 있으니 점검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