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단체 대화방(단톡방)은 다른 소셜미디어에 비해 폐쇄적이다. 대화방에 참여하지 않으면 내용을 알 수 없다. 이런 특성 때문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매년 '단톡방 성희롱' 문제가 되풀이된다. '우리끼린데 어때' 하는 생각에 단톡방에 모여 음담패설을 하다가 누군가의 폭로로 공론화되는 것이다. 지난 5월에도 서울대·고려대·경희대 등에 다니는 남학생 6명이 단톡방에서 한 여학생의 몸매를 평가하고 성생활을 묘사하는 등 성희롱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단톡방 성희롱 자체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신체 접촉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상 성범죄로는 처벌받지 않는다. 대신 모욕죄로는 처벌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해당 단톡방에서 오간 대화가 불특정 다수에게 퍼질 가능성을 뜻하는 '공연(公然)성'이 있어야 한다. 일대일 대화방에서 문자를 주고받았거나 평소 신뢰 관계가 높은 사람들끼리 나눈 대화라면 전파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 대부분의 단톡방 성희롱 문제는 법적 대응보다는 학내 징계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동국대는 지난해 단톡방에서 같은 과 여학생을 상대로 성희롱 발언을 상습적으로 한 남학생 5명을 무기정학 처분했다. 고려대도 2016년 단톡방에서 성희롱을 일삼은 학생들에게 발언 수위에 따라 사회봉사부터 5개월 정학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그렇다면 단톡방 성희롱으로 인한 징계 수준은 어느 정도가 적정할까. 경찰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A씨는 작년 4월 수업 단톡방과 운동부 단톡방에서 여학생 이름을 '젖XX'이라고 부르며 성희롱 발언을 했다. 자치 지휘 근무를 하는 여학생들이 공지나 지시 사항을 올리면 운동부 단톡방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을 수차례 게시하기도 했다. 학교는 작년 10월 '학내·외 생활에서 타인에게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등 성희롱을 해선 안 된다'는 학생 생활 규범을 근거로 A씨에게 퇴학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A씨는 "퇴학 처분은 비위 행위에 비해 과중하다"며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는 지난 15일 퇴학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징계 사유가 되는 것은 맞지만 퇴학까지 하는 것은 과하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A씨의 성희롱 언행은 평소 친하게 지냈던 남학생들로 참여자가 제한된 카카오톡방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성희롱 언행의 직접적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야기한 사건과는 성격이 분명히 다르다"고 했다. 단톡방 성희롱의 경우 피해자를 상대로 직접 저지른 성희롱에 비해선 가볍게 제재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면서 "A씨는 인격적으로 배움과 성숙 과정에 있는 어린 학생이므로 대학생 신분을 박탈하는 것보다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 교육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 유의미하다"고 했다.

앞서 법원은 같은 사유로 퇴학 처분을 당한 경찰대생이 낸 소송에서도 1·2심 모두 학생 손을 들어줬다. 비공개 대화방에서 성희롱 발언을 했을 뿐 피해자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았는데도 퇴학 처분을 내린 것은 가혹하다는 취지였다. 경찰대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퇴학 처분은 정당했다고 판단하고 있어 항소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