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北 체제 미화 상품 잇단 출시
피규어제작, 전시회 등 '김정은 다시보기'
"南北 화해 무드" vs. "과도한 미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서울 광화문 집회가 잇따라 열린 데 이어, 북한 정권을 미화하는 전시회·상품 판매가 잇따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으니굿즈’라는 친근한 용어까지 등장했다. 김정은의 이름 마지막 글자 ‘은’을 귀엽게 부르는 ‘으니’와 상품을 뜻하는 굿즈(goods)를 합친 말이다.
◇이른바 '으니굿즈'…초상화·피규어·손목시계까지 등장
20일 국내 최대 중고거래 커뮤니티 '중고나라'에는 김정은 초상화를 1만 8000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가로 65cm 세로 60cm 크기, 족자 형태다. 판매자는 '고급 천' 소재임을 강조했지만, 이 상품에는 "별 미친 X을 다 본다"는 댓글이 붙었다.
이 사이트에 올라온 스위스 시계브랜드 ‘모바도(Movado)’ 상품 판매자는 김정은이 착용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이 모바도 손목시계를 착용했다는 것이다. 이 상품은 ‘김정은 시계’라고도 불렸다.
김정은 개인의 이미지를 친근하게 만드는 제품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김정은 피규어(figure·모형 인형)가 있다.
중고나라 사이트에서는 김정은에게 슈퍼맨 복장을 입힌 피규어가 등장했다. 가슴에 슈퍼맨의 ‘S’ 이니셜 대신 방사능 로고가 붙어 있다. 이 김정은 피규어는 오른쪽 어깨에 핵미사일을 메고 환하게 웃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피규어와 세트로 판매되고 있다. 가격은 13만원.
중국 장난감 업체 ‘원토이’는 김정은을 6분의 1 크기로 정밀 축소한 피규어 제품을 내놨다. 헤어스타일, 피부톤, 복장까지 실물과 매우 흡사하다.
서울 연남동 아트스페이스담다에는 지난 9일부터 '북조선 판타지'라는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에는 'KIM'이라는 제목으로 김정은을 귀엽게 묘사한 피규어가 전시됐다. 인디가수 '스탠딩 에그'는 자신들의 페이스북에 이 피규어를 소개하면서 "너무 귀여워"라는 글을 남겼다. "세계 최악의 인권 말살 국가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김정은이 귀여우냐"는 반발이 쏟아지자, 이들은 게시물을 지우고 사과했다.
정전 65주년을 맞아 '북한'을 주제로 젊은 작가 3인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지원으로 이뤄졌다. 북조선 판타지 전시장 한쪽 벽에는 '만약 북한에 가게 된다면 OOO 하고 싶다'는 주제로 빈 칸에 관람객 의견을 적어내는 코너가 있다. 여기에는 "김일성 동상 앞에서 사진찍기♡" "정은씨 만나서 초상화 그려보고 싶다. 은근 순둥이일 것 같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잔혹·폭력→호탕·귀여움…젊은층서 김정은 이미지 변화
권력을 3대(代)세습한 김정은은 집권 초기부터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핵 실험, 고모부 장성택 처형, 친형 김정남 암살 행각이 알려지면서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독재자'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미지 반전이 일어났다. "김정은 위원장님 한국에서도 아주 인기가 높다(문재인 대통령)" "백성의 생활을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도자가 마침내 출현(이낙연 국무총리)" "우리나라 큰 기업 2·3세 경영자 가운데 김정은만 한 사람이 있느냐(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여권을 중심으로 김정은에 대한 긍정 평가가 나왔다.
젊은층에서도 김정은에 대한 긍정 이미지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국민대 1학년 학생 1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 이미지가 긍정적이라고 답변한 학생이 57.3%에 달했다. 정상회담 전에는 북한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본 학생들이 66.1%였다.
특히 김정은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학생들은 정상회담 이전에 4.7%에 불과했지만, 이후 48.3%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김정은’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도 종전 독재자·핵·잔혹감·고도비만·폭력이었지만, 이제는 호탕·젊음·유머러스·귀여움·새로움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설문결과다.
김정은 피규어를 가리켜 "귀엽다"고 했던 인디밴드 '스탠딩에그'는 사과문에서 "그저 요즘 남북의 화해 무드를 환영하는 것이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라고 생각했다"고 썼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대령은 "우리는 아직 천안함 사태·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라며 "김정은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건 자유겠지만, 평화 분위기에 휩쓸린 과도한 미화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단체들은 "김정은과 북한 정권에 대한 과도한 미화는 국가보안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7일과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김정은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집회와 연설대회를 잇따라 개최한 ‘백두칭송위원회’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북한과 관련한 상품을 팔거나 행사, 전시를 개최할 경우 찬양고무·이적표현물에 해당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