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해결사(Mr. Fix It)' '코스트 킬러(cost-killer)'로 불려온 세계 자동차 업계의 스타 CEO 카를로스 곤이 몰락했다. 세계 자동차 판매 대수 2위의 르노·닛산·미쓰비시 자동차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19일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에 체포됐다. 곤 회장은 자택 구입에 거액의 회사 자금을 유용하고, 자신의 월급을 신고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가져간 혐의를 받고 있다. 그의 비리와 관련된 금액이 50억엔(약 500억원) 이상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완성차 판매 기준 세계 2위 자동차그룹 르노·닛산·미쓰비시의 카를로스 곤 회장이 지난 2015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그는 19일 일본 검찰에 체포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곤 회장은 지난해 닛산으로부터 7억3500만엔(약 73억원), 미쓰비시 자동차로부터 2억2700만엔, 르노로부터 약 9억5000만엔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유가증권 보고서에 기록돼 있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받은 연봉은 이보다 수십억엔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도쿄지검 특수부의 용의자 체포는 '기소→재판에서의 유죄'를 의미한다. 닛산자동차 이사회가 도쿄지검 수사 결과를 지켜보지도 않고, 그가 체포된 날 저녁에 곤 회장 해임 성명을 낸 것은 그가 나락으로 떨어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다.

곤은 한때 일본에서 '곤 사마'로 불리며 추앙을 받았다. 전형적인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세계인)인 그는 레바논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1954년 브라질에서 태어난 뒤 레바논에서 성장했다. 이 때문에 영어와 프랑스어는 물론 스페인어, 이탈리아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프랑스 명문 에콜 폴리테크니크(국립이공과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후 출세 가도를 달렸다. 24세에 자동차 타이어 회사 미슐랭에 입사해 불과 7년 만인 31세의 나이로 브라질 미슐랭 사장이 됐다.

곤은 1996년 르노자동차 부사장으로 전직했다. 1999년 르노가 부도 직전에 몰린 닛산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최고운영책임자(COO)로 파견돼 닛산 회생의 책임을 맡았다. 당시 일본 경제계에서는 "일본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 경영자가 일본 문화가 숨 쉬는 닛산을 제대로 경영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곤이 부임하자마자 제시한 '닛산 재건계획(NRP)'은 그때까지 일본 기업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적인 구조조정 내용이었다. 그는 3년간 1조엔(약 10조원)의 비용 삭감을 통해 회사를 살려내겠다고 했다. 2조엔에 달하는 부채를 7000억엔으로 줄이고, 전체 사원 15%를 감원하겠다고 했다. 이 계획을 못 지키면 모든 임원과 함께 닛산을 그만두겠다고도 했다. 이 계획에 따라 혹독하게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5개 공장 문을 닫고, 20개 판매 회사 대표를 교체했다. 구매 비용도 20% 깎았다. 결국 닛산은 2000년 3310억엔 흑자를 기록하며 닛산자동차는 기적적으로 부활했다. 곤은 그 업적으로 2001년 시사주간지 타임과 CNN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CEO'로 뽑혔다. 그다음 해엔 포천지의 '올해의 기업인'으로 선정됐다.

'세계 자동차 업계의 마술사'가 된 그는 2005년부터는 르노 자동차의 CEO도 맡았다. 세계 100대 기업 두 곳의 대표를 맡아 유라시아 대륙을 번갈아가며 자동차 경영을 해왔다. 글로벌 금융 위기 후인 2011년에는 당시 흔들리던 경쟁사인 GM과 포드로부터도 영입 제안을 받았다.

2016년 말에는 20년 동안 상습적으로 연비 조작을 한 사실이 들통나 파산 위기에 몰렸던 미쓰비시를 인수했다. 2017년 그는 20년 가까이 맡아오던 닛산의 CEO에서는 물러나 이사회 의장과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러나 곤이 이끌던 닛산자동차도 지난 7월 배기가스와 연비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졌다.

거침없이 달려온 그의 인생 이면(裏面)에서는 문제가 잉태되고 있었다. 초(超)거액의 연봉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부에 기재된 연봉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았다가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CEO로 기록될 운명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