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종전(終戰) 100주년 기념식이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10일(현지 시각)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프랑스 북부 콩피에뉴 숲을 찾았다.
둘은 콩피에뉴 숲의 프랑스 국립전쟁기념관에 위치한 한 열차 객실에 들어가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서로 손을 잡았다. 이 객실은 100년 전인 1918년 11월 11일 독일이 연합군과 휴전 협정을 맺었던 열차 객실을 재현해 만든 것이다.
독일로선 사실상 항복 문서에 서명한 '굴욕의 장소'인 셈이다. 독일 정상이 콩피에뉴 숲을 방문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휴전 협정이 군 지휘소도 아닌 숲속 철로 위 열차 객실에서 체결된 건 연합군의 선택이었다. 당시 연합군의 본부는 콩피에뉴 숲과 파리 사이 도시인 상리스에 있었고, 충분히 이곳으로 독일군을 불러 협정식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연합군 총사령관 페르디낭 포슈 장군은 "상리스 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면서 은밀한 장소인 콩피에뉴 숲을 골랐다. 상리스는 전쟁 당시 독일군 공격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으로 꼽힌다. 여성 등 많은 주민이 포로로 끌려가 말 못할 수모를 겪었다. 전쟁 초기 상리스 시장(市長)이 총살되기도 했다. 포슈 장군은 휴전 협정이라 해도 상리스 주민들에게 독일군의 얼굴을 다시 보이는 건 무리라고 봤다.
또 전쟁에 패한 독일군이 모욕감을 덜 느끼도록 하기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포슈 장군은 패한 독일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휴전 장소를 조용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인 열차 안으로 정했다"면서 "그의 의도대로 휴전 협정식은 프랑스 대중에 직접 노출되지 않고 핵심 인사만 참석한 가운데 이뤄졌다"고 했다. 프랑스 정부는 얼마 뒤 이 열차를 수도 파리로 옮겨 전시했다.
이 열차는 22년 뒤 다시 콩피에뉴 숲으로 '소환'됐다. 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침공해 승리한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1차 대전 항복 문서 조인의 굴욕을 되갚기 위해 1940년 6월 22일 프랑스 항복 서명식을 1918년 협정 때와 같은 장소, 같은 열차에서 연출한 것이다. 히틀러는 1918년 포슈 장군이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프랑스의 샤를 욍치제 장군이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히틀러는 이 장면을 대대적으로 선전했고, 나치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이 열차는 다시 불붙은 프랑스 소속 연합군과 독일군 간 전투 과정에서 불타버렸다. 마크롱과 메르켈이 찾은 객실은 불타 없어진 객실을 재현해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