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태우 기자] 트레이 힐만 SK 감독은 가장 경험이 많은 파트로 내야 수비를 뽑는다. 지도자 경험도 풍부하고, 연구도 많이 했다고 말한다. 그런 힐만 감독은 김성현(31·SK)을 수준급 수비수로 본다. 풋워크가 좋고, 강한 어깨를 가졌다는 이유다.
그러나 그런 힐만 감독의 판단과는 다르게 김성현은 ‘불안한 이미지’가 붙어 있는 쪽에 가깝다. 기민한 움직임과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하이라이트 필름’을 자주 만들어 내는 유형의 수비수지만, 오히려 쉬운 것을 자주 놓쳐 실책을 저지른 경우가 많아서다. 김성현을 지도한 수비 코치들은 모두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이 약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이미지가 붙은 결정적인 계기도 있었다. 바로 가을 무대에서였다. 2015년 넥센과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끝내기 실책을 저질렀다. 내야 한가운데 뜬 공을 전력질주해 잡으려 했으나 잡지 못했다. 김성현은 경기 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실수를 자책했지만, ‘히 드랍 더 볼’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이름 앞에 붙었다. 좀처럼 그 꼬리표를 떼기 어려웠다.
김성현은 그렇게 유격수 자리를 내놓고 최근에는 2루수로 뛰었다. 스스로는 유격수에 대한 미련이 있었지만 팀의 방침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올 시즌 중반부터 다시 기회가 왔다. 힐만 감독은 김성현을 다시 유격수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SK 내야수 중 기본적인 수비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의욕적으로 유격수 복귀에 나섰지만 한 번 떨어진 이미지를 지우기는 쉽지 않았다. 올 시즌에도 17개의 실책을 했다. 자신의 실책이 나오면 이상하게 거의 실점을 하는 패턴도 김성현의 어깨를 움츠려들게 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이런 양상은 이어졌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실책이 나온 뒤에도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는다. 지금의 김성현이 예전과 달라진 부분이다.
한국시리즈에서도 갈수록 안정감을 찾고 있다. 3차전에서는 5회 실책 한 개가 실점으로 이어지기는 했으나 그 전에 세 차례의 좋은 수비를 펼치며 마운드의 메릴 켈리를 지원했다. 3·유간으로 빠지는 타구를 재빨리 잡아 강한 어깨로 아웃시키며 덕아웃 분위기를 살렸다. SK에서는 오직 김성현만이 할 수 있는 수비였다. 4차전에서도 패하기는 했으나 8회 그림 같은 수비를 펼치며 자신의 기본적인 자질을 입증했다.
5차전에서는 수비에서 안정적인 모습으로 힘을 냈다. 2루수 강승호와 짝을 이룬 김성현은 이날 실수 없이 경기를 마쳤다. 두 차례 병살 플레이를 깔끔하게 완성시켰고, 기본적인 포구와 송구에서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적당한 긴장감이 있었다. 대개 이럴 때 최고의 경기력이 나오는데 김성현이 그랬다.
타석에서도 영웅이 됐다. 0-1로 뒤진 7회 1사 2루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적시 2루타를 쳐 SK를 벼랑에서 구해냈다. 8회 2사 만루에서도 끈질긴 승부를 벌이며 밀어내기 득점을 만들어냈다. 김성현이 5차전 MVP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공격과 수비에서 가장 중요한 몫을 해냈다.
하지만 아직 샴페인을 터뜨리기는 이르다. SK는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아직 1승이 남아있다. 5차전에서 두산이 수비에서 자멸한 것을 생각하면, SK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내야 사령관인 김성현이 무게중심을 잘 잡고 마지막까지 버텨야 한다. SK는 좌익수들의 송구가 전체적으로 좋지 않다. 기본적인 수비는 물론 컷오프 플레이 등 김성현이 해야 할 일이 많기도 하다.
마지막까지 안정된 수비로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일조한다면, 가지고 있던 불명예스러운 이미지도 조금씩 지워질 수 있다. 내년 유격수 무한경쟁에서도 한 걸음 앞서 나갈 수 있음은 물론이다. ‘히 드랍 더 볼’ 당시 흘렸던 눈물이, 올해는 환호로 바뀔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