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퉁퉁 불은 라면이나, 반만 남긴 에그머핀에서 서글픔을 느낀다. 김금희(39)의 짧은 소설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마음산책)는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등단 후 신문과 잡지, 웹페이지 등에 써온 19편의 엽편(葉片)을 모았다. "친구들이 '금희의 일기'라고 했어요. 하루를 살면서 봤던 풍경, 나눴던 대화 모두 이야기의 소재가 됐어요. 퉁퉁 불은 라면을 좋아한다는 지인의 말이 왠지 뭉클해져서 쓴 소설도 있고요."

김금희는 요즘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 그만두고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신동엽문학상과 현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았다. 청춘의 마음을 두드리는 따뜻한 문장들이 소셜미디어에 자주 공유됐고, 단편 '너무 한낮의 연애'는 지난달 최강희 주연의 KBS 단막극으로 만들어졌다.

김금희는 "소설을 쓰면서 울진 않았는데, 드라마로 만들어진 '너무 한낮의 연애'를 보고 울었다"면서 "원래 자주 울고 잘 우는 편"이라고 했다.

올해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을 출간한 데 이어 이번엔 짧은 소설이다. "사람이 안 되는 건 괜찮지만 사람 취급을 못 받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인 서른 즈음의 청춘이나 매일 아침 "밭에서 무 같은 것을 뽑아 올리듯" 몸을 끄집어 올려 출근하는 회사원 등이 주인공. 긴 제목은 소설 속 문장에서 가져왔다. 지난 2일 만난 김금희 작가는 "생각하고, 들여다보고, 굳이 돌아가서 또다시 보는 미련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면서 "내 모습과도 비슷하고 내가 하는 글쓰기의 방식을 잘 보여주는 문장이라 제목으로 골랐다"고 했다.

주변에 한 명쯤 있을 법한 인물들을 통해 실패나 이별, 상실로 인해 텅 빈 마음을 그려낸다. 그는 누군가 떠난 상실감을 지상의 압력을 견디는 지하철의 빈 공간에 빗대며 이렇게 썼다. '그것은 사실 빈 공간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지상이 빈 공간을 견디는 것이기도 했다. (…) 각별히 애정한, 마음을 준 누군가가 우리 일상에서 빠져나갔을 때, (…) 그 상실감을 견뎌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상대 역시 견뎌야 완전한 이별이 가능한 것처럼'(우리가 헤이,라고 부를 때).

그는 "무언가를 잃어버리거나, 곁에 없어서 기다리는 상황에서 소설을 주로 시작한다"면서 "그 마음이 어떻게 회복되는지 따라가는 편"이라고 했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김금희 표 SF도 볼 수 있다. '춤을 추며 말없이'에서는 할아버지와 지내며 '나 정정해' '말세다 말세야' 같은 말투를 배운 인공지능 로봇과 그 로봇을 통해 할아버지를 회상하는 손자가 나온다. 그는 "가상의 설정에 도전해봤는데 결국엔 또 기억이나 마음에 대해 얘기하고 있더라"며 웃었다.

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 '경애의 마음' 등에서 연애를 소재로 다뤄오면서 최근 '연애 상담'을 콘셉트로 독자와의 만남 행사까지 갖게 됐다. "성장담을 그리기에 적합하다고 느꼈어요. 한 사람에게 깊게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이 삶의 각도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잖아요. 그동안은 주로 식어버린 연애를 다뤘는데 이제는 뜨거운 로맨스도 그릴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최근 KBS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너무 한낮의 연애'는 소셜미디어에서 특히 많이 언급됐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검색해보긴 하지만 독자에 대한 월권 같아서 글을 읽어보진 않는다. '내 책이 지금 고양이와 함께 있네' '해변에 가 있구나' 사진을 훑어보는 정도"라고 했다.

몇 달 전부터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가파도의 작가 레지던시에서 살고 있다. "시야가 탁 트인 평지 섬으로 130명의 주민이 있는데, 물질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노동하고 있다는 자부심이나 건강한 자신감이 느껴져요. 언젠가는 그런 아름다운 섬 풍경도 소설에 등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