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 앞두고 예비신부 무참히 살해
시신까지 훼손…계획범죄 가능성
유가족 "심신미약 안 돼…얼굴 공개하라"
딸이 살해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 엄마의 체중은 5kg이나 줄었다. 울다가 까무러치고, 다시 정신이 들면 우는 일이 반복됐다. 잠이 오지 않아 매일 밤 뒤척였다. 엄마는 "죽은 딸의 침대에 누워야만 겨우 눈이 감긴다"고 했다.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이른 아침 출근길을 서둘렀던 큰딸 김민주(23·가명)씨는 지난달 24일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범인은 남자친구 심모(27)씨였다. 경찰에 따르면 심씨는 이날 서울에서 일하는 민주씨를 강원도 춘천시 일터(국밥집)로 불러 들였고, 이곳에서 목 졸라 살해했다. 두 사람은 한때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황망하게 딸을 잃은 민주씨 부모가 지난 2일 경기도 구리시 자택에서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했다. 딸을 살해한 심씨의 신원이 세상에 공개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민주씨 부모는 "(우리 대신) 밝고 예뻤던 생전의 우리 딸 사진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ㅡ범인은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고 있다.
"분명한 계획범죄다. 우리 딸을 목 졸라 살해한 뒤에 혹시나 다시 살아날까 싶어서 흉기로 급소를 수 차례 찔렀다. 숨졌는지 '재확인'한 거다. 그 다음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방법으로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우발적인가. 경찰은 이런 사실을 다 조사한 걸로 안다. 당시 범행 현장 주변에 있던 폐쇄회로(CC)TV와 블랙박스 제보를 받고 있다."
ㅡ범행 동기로 '혼수문제'를 거론했다는데.
"만난 지 석 달밖에 안 됐다. 아직 상견례도 안 했는데, 혼수 문제를 어떻게 꺼내나. 저 또한 딸에게 '시댁에 손 벌리지 말라'고 당부해왔다. 절대로 혼수 문제가 아니다. 형량을 깎기 위한 거짓 수작이다." (실제 경찰의 디지털포렌식 결과 혼수·예단 문제로 두 사람이 나눈 별다른 대화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ㅡ계획범죄로 보는 근거가 있나.
"딸의 카카오톡을 보면 범행 당일, 딸에게 집요하게 춘천으로 올 것을 요구했다. 그날 딸은 서울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도 무조건 내려오라는 식이었다. 필요하지도 않은 '결혼 계획서'를 써야 한다면서…. 오죽하면 딸이 '재촉 좀 하지마'라고 답할 정도였다.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끌어들인 거다."
ㅡ피의자 첫 인상은 어땠나.
"강박적으로 보였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하겠다고 밀어 붙였다. 성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때는 결혼을 전제로 만나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처음에는 아파트다 주택이다 공방이다 다 차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말이 계속 바뀌니까 이상했다. 딸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는데 춘천에서 신혼집을 차리자고 했다. 좀 더 시간을 갖자니까 (장모가 될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20~30분씩 가르치듯이 혼을 냈다.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본인 마음대로 꺾으려고 했다."
민주씨는 2014년 서울 동대문구 어학원에서 범인 심씨를 처음 만났다. 그는 ‘K대 동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민주씨에게 연락처를 물었다. 첫 만남부터 ‘가짜’였다. K대 측은 심OO이라는 남성이 재학하거나 졸업한 사실이 없다고 확인했다. 심씨가 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이름으로 학교에 다녔을 가능성도 낮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경찰조사에서 "K대를 졸업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ㅡ가짜 신분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나
"처음에 (딸과)같은 대학 출신이라고 호감을 얻고, 우리에게도 예의가 발랐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회에서 인턴까지 지냈다고도 했는데, 그런 사람이 부모가 하는 국밥집 일을 거드는 것이 석연치 않았다. 아로니아 농장을 운영한다느니, 태양광 발전사업을 한다고도 떠들어 댔다. 돌이켜보면 범인 거짓말에 우리가 완전히 놀아난 거다."
ㅡ민주씨는 어떤 딸이었나.
"중·고교 때부터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했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하던 딸이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 때문에 힘들게 공부했던 딸이다. 매일 공부하느라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대기업에 취업한 뒤 집안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제 우리도 행복해지나 싶었다. 부모로서 착하게 살라고, 그러면 좋은 끝이 올 거라고 가르쳤다. 지금은 착하게 살라고 가르친 게 사무친다. 가장 후회가 된다. 이게 좋은 끝인가."
ㅡ범인을 엄벌해달라는 취지의 국민청원을 올렸다.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까 싶어서다. 지금 가장 두려운 게 뭔지 아는가. 바로 판사가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감형하는 거다. 결혼을 앞둔 범인이 압박감에 그랬다고 할까 봐…. 여기는 술에 취했다고 감형하는 나라다. 조두순도 이제 곧 출소라고 하지 않나.
지금 범인은 27세다. ‘심신미약 감형’이 적용되면 40~50대에 세상으로 나온다. 누군가를 다시 살해하기에 무리가 없는 나이다. 이런 범인의 얼굴은 세상에 공개돼야 한다. 바깥으로 나올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비참한 사건이 다시 안 일어난다. 나는 엄마니까, 국민청원 동의가 20만명이 될 때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틸 거다. 죽은 우리 딸 한을 좀 풀어달라."
ㅡ범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범인이 경찰 조사에서 '사랑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고 전해 들었다. 끔찍하기 짝이 없다. 그런 거라면 너도 죽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지난달 31일 유가족은 "엽기적인 살인마의 범행을 어떻게 사람이 할 짓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중대한 범죄에 대해 살인 피의자의 얼굴 등 신상을 공개한다면 저 같이 피눈물을 흘리는 엄마가 나오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청와대 청원 게시판(http://bitly.kr/kVES)에 썼다. 청원은 3일 기준 8만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