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병역 거부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진 1일 대법정엔 사건 당사자인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34)씨도 나왔다. 그는 2013년 군 입대를 거부해 재판에 넘겨진 뒤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상태였다. 재판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건을 파기 환송한다"는 주문(主文)을 읽자 그는 활짝 웃었다. 함께 온 변호사들과 "고생 많았다"며 서로 악수했다. 몇몇 방청객은 "감격스러운 선고"라며 대법정 안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대법원 판결 취지는 종교적 신념·양심 등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하는 게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행 병역법엔 현역 입영 통지를 받은 사람이 입영을 거부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단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예외'라고 돼 있다. 대법원은 종교나 개인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종교적 병역 거부는 정당한 사유가 아니라고 했던 2004년 대법원 판례를 14년 만에 바꾼 것이다.
현 대법원과 2004년 대법원은 모두 종교적 병역 거부가 '소극적 양심 실현의 자유'에 따른 행동으로 봤다. 그러나 과거 대법원은 이 '양심 실현의 자유'는 병역 의무라는 또 다른 가치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 것으로 봤다. 그러나 현 대법원은 "병역 의무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했다.
판결 이후 여론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진보 성향 단체들은 선고 직후 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갖고 "법원도 인정했다. 양심의 자유 보장하라" "병역거부자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비판적인 목소리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김영길 바른군인권연구소 대표는 "이번 판결은 정치적 판단이었고 심히 유감"이라며 "현재 성실히 군 복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느낄 수 있는 결정"이라고 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묵묵히 군 생활하며 시간과 노력 등을 바친 우리는 양심이 없어서 그랬나"는 격앙된 반응이 나왔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는 "저게 양심적이라면 군대 간 우리는 비양심적 죄인인가" "군대 간 사람들만 바보 됐다"는 댓글이 다수 달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법원 판결을 무효화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160여 건 올라왔다.
개신교 단체들도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기독교연합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안보 현실을 무시한 판결"이라며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해석이 낳을 우리 사회의 혼란에 대해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극명하게 갈렸다. 대법관 13명 중 김명수 대법원장 등 9명은 "양심을 처벌하는 건 자유민주 정신에 위배한다"고 했다. 반면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다수 의견은 역사와 헌법을 도외시한 해석론"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 등 4명은 소수 의견을 통해 "병역법에서 말하는 정당한 사유란 '당사자의 질병이나 재난의 발생 등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사정'에 한정된다"며 종교적 병역 거부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상옥·조희대 대법관은 보충 의견까지 내 "양심이 윤리적 내심(內心) 영역이고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라면 법원이 심사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데도 (다수 의견처럼) 이를 심사·판단할 수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법률에 규정이 없는데도 무리한 해석으로 양심의 자유에 의한 병역 거부를 인정하는 데에서 이런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대체 복무 등 대안 없이 종교적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는 현행 병역법은 위헌이라며 내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라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아직 정부가 제도를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대법원이 종교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병역법 처벌 조항을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당분간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장 대체 복무제가 없는 상태에서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면 대체 복무를 하지도 않고도 병역이 면제되는 일이 벌어진다. 지난 8월 30일 대법원에서 열린 공개 변론에서 검찰 측이 제기했던 문제다.
국방부는 이러한 법적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대체 복무제 시행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그전까지는 종교적 병역 거부 재판을 진행 중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입영을 연기시킬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