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종교적 이유로 군 입대를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34)씨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는 대법관 4명이 반대 의견을 냈다. 이날 재판을 끝으로 퇴임한 김소영 대법관과 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 등이다. 소수 의견 대법관들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우리나라의 엄중한 안보상황, 병역의무의 형평성 등을 감안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될 수 없다"며 "기존 법리를 변경해야 할 만한 명백한 규범적, 현실적 변화도 없는데, 다수 견해는 국민의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 갈등과 혼란을 초래할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왼쪽부터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

김 대법관 등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에 규정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병역법 88조 1항은 현역 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임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불응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 대법관은 "병역법의 ‘정당한 사유’는 질병이나 재난의 발생 등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사정에 한정된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이 개인적인 신념이나 가치관, 세계관 등 주관적 사정은 정당한 사유가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수 의견이 제시한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불완전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판결에서 다수 대법관은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양심 △삶의 전부에 영향을 미칠 것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 것 △전반적인 삶의 모습 등을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병역거부와 관련된 진정한 양심의 존재 여부를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다수 의견이 제시하는 사정들은 형사소송법이 추구하는 ‘실체적 진실 발견’에 부합하는 완전한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양심적 병역거부는 국가안전보장과 국방의 의무 실현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에 형사처벌을 가하는 것 자체를 마치 위헌, 위법인 것처럼 해석하는 다수 의견은 논리적 비약이다"고 했다.

◇曺·朴 대법관 "납세거부·종교우월 주장하는데 양심적?"
반대 의견을 낸 조희대·박상옥 대법관은 이날 피고인으로 선 오승헌씨의 사정을 "구체적·개별적으로 살펴봐도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조 대법관 등은 "오씨는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로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따라 국가적 차원의 무장해제와, 납세거부, 종교우월까지 연계해 주장했다"며 "이러한 주장을 펴는 오씨를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인정해 무죄선고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또 "다수 의견이 제시한 요소들은 특정 종교의 독실한 신도인지를 가려내는 기준이 될 뿐, 양심적 병역거부자인지를 가려내는 기준이 될 수 없다"며 "특정 종교에 특혜를 주는 것이고, 이는 양심과 종교의 자유 보장의 한계를 벗어나고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종교·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해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 씨가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병역법 위반 전원합의체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대법원은 종교·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했다.

두 대법관은 또 외국과 비교한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 대법관 등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독일이 있는데, 독일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며 "(독일은) 수천만 명의 인명이 살상된 참상을 경험하고, 침략전쟁에 대해 깊이 반성해 헌법적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침략전쟁을 일으킨 적 없고 오히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강점기 등 여러 차례 외세의 침략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며 "이런 참혹한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 헌법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신성한 사명으로 규정하고, 국방의 의무에 대한 일체의 예외를 규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했다.

◇金·李 대법관 "특정 종파 병역문제 해결밖에 안돼"
김소영·이기택 대법관도 반대하는 보충의견을 냈다. 두 대법관은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대체복무제 도입 등을 통해 해결할 국가정책의 문제"라고 했다. 김 대법관 등은 "헌재의 결정으로 사실상 위헌성을 띈 현행 병역법 조항을 서둘러 판단할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를 포함하는 국회의 입법을 기다리는 게 마땅하다"며 "(국회 입법이) 이 문제를 명예롭게 해결하고 국민통합으로 나아가는 길이다"라고 했다. 헌재는 지난 6월 병역의 종류에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법을 바꾸라고 권고한 바 있다.

두 대법관은 또 다수 의견대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면 오히려 양심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대법관 등은 "다수 의견은 종래보다 양심의 범위를 더 좁혀서 ‘깊고 확고하며 진실함’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는 특정 종파(여호와의 증인)의 병역거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헌법이 보호하는 양심의 범위를 근거 없이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양심의 자유를 더욱 억제하는 것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병역을 거부하는 종교의 신도가 늘어날수록 군인이 줄어들고, 궁극적으로 군대가 사라지면,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 줄 국가적 토대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