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사전 통보 없이 성폭행을 피하려다 고용주를 살해한 인도네시아 가정부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에 대해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공식적으로 항의했다. 사우디 정부는 2015년에도 통보 없이 인도네시아 가정부 2명을 처형한 바 있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양국간 외교 분쟁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날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아델 알 주베이르 사우디 외교장관에게 전화통화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인도네시아에 사전 통보 없이 사우디에 파견된 인도네시아 여성 가정부를 처형한 것을 공식적으로 항의했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2018년 10월 29일 사우디 고용주를 살해한 인도네시아 가정부 투티 투르실라와티를 처형했다. 사진은 인도네시아 NGO ‘Migrant Care’가 트위터에 트르실라와티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올린 사진.

위도도 대통령이 발표한 성명문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해당 인도네시아 가정부가 사망하기 바로 전 주에 주베이르 사우디 외교장관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해 여러차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가 인도네시아에 사전 통보를 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히크마한토 주와나 인도네시아대학 교수는 "국제관계의 규범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달 29일 사우디 정부에 의해 처형당한 인도네시아 가정부 투티 투르실라와티는 2010년 고용주 남성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투르실라와티는 고용주가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것을 막는 과정에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11년 사우디 법원은 투르실라와티가 계획적인 살인을 했다고 판결하며 사형을 선고했다.

인도네시아 가정부가 사우디에서 사형 집행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4월 사우디 정부는 인도네시아 가정부 2명을 연이어 처형했다. 한 명은 고용주의 어린 자녀를 살해한 혐의를, 다른 한 명은 고용주의 부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사우디는 당시에도 인도네시아 정부와 당사자들의 가족에게 통보를 하지 않고 사형을 집행해 양국이 외교 갈등을 빚었다.

이번 사건으로 사우디에 파견된 해외 노동자 중 인도네시아 뿐만 아니라 다른 100여개 국가 국민들의 열악한 근로 현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현재 1100만명의 해외 노동자들이 사우디에 거주하며 일을 하고 있다. 이 중 230만명은 사우디 가정집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의 근로 비자 발급을 고용주가 보증하도록 하는 ‘카팔라 체계(Kafala system)’에 따라 장시간 노동, 여권 등 개인 물품 압수 등 비인간적인 처우에 시달리고 있다.

또 해외 노동자들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의 엄격한 이슬람 율법 ‘샤리아’의 적용을 받고 있다. 사우디는 마약 거래, 강간, 살인, 무장 강도 등의 범죄를 모두 사형으로 처벌한다. 사우디는 2017년 146명을 처형하는 등 중국과 이란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사형 집행 횟수가 많은 국가다.

우스만 하미드 엠네스티 인도네시아 지부장은 "사우디아라비아는 양국간 외교 윤리를 여러 차례 훼손했다"고 밝혔다. 또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형벌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도 다른 국가에 자국 국민을 석방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며 인도네시아의 인권 현실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