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 제10조 제2항, '심신미약'에 절대 지위 부여
잔혹살인해도 사형·무기형 받지 않아
심신미약 인정하되, '양형 요소 중 하나'로 봐야
"강서구 피시방 살인 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이 글은 청원 동의가 무려 100만명이 넘는다. 공정하지 않은 ‘심신미약 감경’에 대해 국민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문제가 된 심신미약 감경은 형법 제10조 제2항에 근거한다.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 혹은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심신미약이 확인되면 반드시 형법 55조에 따라 사형과 무기징역형을 선고할 수 없고, 해당 범죄의 법정형을 1/2 감경한 범위 내에서 선고해야 한다. 즉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범죄의 경중과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형량을 줄일 수 있다. 양형 고려 인자 중 최고의 지위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심신미약이면 범죄 경중과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형량을 줄이는 형법 규정은 과연 ‘사법정의’인가.
심신미약으로 감경하는 이유는 이른바 ‘책임원칙’이다. 책임원칙이란 적법행위를 할 수 있는 기대가능성이 있을 때 형벌이 부과되고, 행위 비난가능성에 비례해서 형벌 종류와 폭을 정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심신미약의 경우 정상인의 범죄 행위와 비교해 비난받을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감형하는 요소로 인정하여야 한다. 여기까지가 책임원칙 영역이다. 어느 정도 까지 또 얼마나 감경 할 것인지는 책임원칙 영역이 아니라 입법재량 영역이다.
"비난가능성이 낮아질 때 ‘필요적 감경’해야 한다"는 의미와 "그 내용을 형법에 규정하면서 ‘필요적 감경’해야 한다"는 의미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전자의 ‘필요적 감경’이란 책임원칙에 근거한 ‘당위’를 의미하는 것이고, 후자의 ‘필요적 감경’이란 감경의 정도와 범위에 대한 ‘법적효과’를 의미하는 것이다.
갑이 사람을 살해했다고 치자. 그것도 계획적 범행, 잔인한 범행수법, 살해욕의 발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범행’이라고 치자. 그런데 이 갑은 당시 심신미약임이 확인됐다. 계획적 범행, 잔인한 범행 수법 등은 ‘가중적 양형인자’다. 오로지 심신미약만 ‘감경적 양형 인자’이다.
현행법은 심신미약만 확인되면, 살인죄를 저질러도 사형,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없다. 법정형을 의무적으로 1/2 감경해서 선고하여야 한다. 일단 이렇게 감형부터 하고 난 뒤, 계획성, 잔인함 등 ‘가중 요소’를 살핀다. 심신미약은 다른 어떤 가중적 양형인자도 대항할 수 없는 ‘무적의 감형 요소’인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참을 수 없는 불편한 기억으로 공유되고 있는 사건들. 나영이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조두순도, 서울 시민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이게 한 강남역 살인사건도 이러한 이유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할 수 없었다.
이런 심신미약 감경에 대한 ‘법적효과’를 부여하고 있는 형법 제10조 제2항을 폐지하면 ‘책임원칙’에 반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다시 갑의 예로 가보자. 의도적으로 잔인하게 불특정 범죄를 저지른 심신미약자의 범행을 다룰 때, 형법 제10조 제2항이 폐지되었다면 심신미약은 감경요소, 나머지는 가중적 양형요소로 보고 이들 관계를 평가해 형을 정하면 되는 것이다.
형벌 부과의 대원칙은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구현하는 것이다. 심신미약이 다른 어떠한 가중 양형 인자 위에서 군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110만명 이상이 청원하고 있다.
심신미약은 ‘감경 사유 중 하나’의 지위면 족하다. 심신미약을 감경인자로 보았다는 점에서 책임원칙에 부합하고, 심신미약이 형종이나 형량을 의무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국민의 법감정이 합치한다.
심신미약을 책임감경 양형인자 중 하나로 본다면 현재의 형법 제10조 제2항은 폐지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제10조 제2항의 폐지는 심신감경 폐지가 아니라 반드시 법률상 감경해야 한다는 ‘법적효과’의 폐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적정한 형벌을 요구하는 국민 목소리는 국가에게 요구하는 준엄한 명령이다. ‘심신미약’의 ‘절대적 권능’은 반드시 조정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