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22)씨는 지난 4월까지 제조업체 두 곳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 복무를 했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김씨는 경력을 쌓기 위해 군 복무(당시 21개월) 대신 34개월짜리 산업기능요원을 택했다. 구직 사이트에서 찾은 첫 근무지는 수도권의 가구 제조 업체였다. 직원 11명 중 8명이 김씨 같은 산업기능요원이었다. 월급은 150만원이었고 체불도 잦아 친구들에게 생활비를 빌려야 했다.
업체는 작년 4월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산업기능요원들은 병역법 시행령에 따라 3개월 안에 새 직장을 찾거나 군에 입대해야 했다. 한 달 후 이직한 지방의 한 제조업체는 산업기능요원 사이에서 "지옥"이라고 불렸다. "접착제 냄새 때문에 숨 쉬기조차 괴로워서"라고 했다. 김씨는 여기서 11개월 근무했다. 김씨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다"고 했다. 전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산업기능요원 7명 중 4명은 새 회사를 못 찾아 군에 입대했다.
군 복무 대신 기업체에서 일하는 산업기능요원 제도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기능요원 제도는 방위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1973년 도입됐다. 매년 1만5000명가량을 선발한다. 9월 말 기준 2만8614명이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영세기업에서는 더럽고 힘든 일을 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산업기능요원 A씨는 2년째 한 전자장비 회사에서 시공 설치와 수리 업무를 하고 있다. A씨는 "일주일에 평균 80시간씩 근무하고 월급은 176만원 받는다"고 했다. 아침 7시부터 자정까지 작업하고 새벽 2시에 다시 출근하는 날도 있다. 온종일 한 끼도 못 먹고 일하는 날도 허다하다.
일자리 자체가 불안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7300여 개 업체가 병무청으로부터 산업기능요원 지원 대상 업체로 선정돼 있다. 산업기능요원을 포함해 상시 근로자가 10인 이상(특성화고 취업 협약 기업은 5인 이상)이고 제조·매출 실적만 있으면 된다. 영세 업체도 많은 셈이다.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병무청의 선정 기준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영세 업체가 젊은 인력을 싼값에 부려 먹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이 가운데 매년 500개 넘는 업체가 파산 등의 이유로 지정이 취소된다. 해당 회사에서 일하던 산업기능요원은 3개월 안에 전직해야 한다. 전직에 실패하면 신체등급에 따라 남은 기간 육군이나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해야 한다.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했던 기간의 경우 4분의 1만 복무 기간으로 인정된다. 만약 산업기능요원 복무 기간 34개월 중 3개월이 남은 사람이 직장을 못 찾아 입대할 경우 군에서 13개월을 복무해야 한다.
산업기능요원이 되려면 산업기능요원 채용 공고를 낸 회사에 직접 지원하면 된다. 업체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다고 한다. 산업기능요원인 권모(22)씨는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싶은데 입사하기 전에는 정보가 없다"며 "인터넷에 나와 있는 정보는 80%가 가짜"라고 했다. 산업기능요원은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많이 지원하는데 일자리가 지원자보다 적다. 산업기능요원은 매년 1만5000명 뽑는데, 특성화고 3학년 남학생은 6만명에 가깝다. 권씨는 "경쟁이 치열해 업체 조건을 따지기 어려운 면도 있다"고 했다.
산업기능요원들의 산업 재해 발생 건수도 매년 늘고 있다.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이 병무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업기능요원의 사고 발생 건수는 2015년 57건에서 2016년 81건, 2017년 113건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 4월까지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했던 강모(22)씨는 지난해 초 떨어지는 절단기를 피하다 넘어져 무릎 인대가 늘어났다. 회사 직원이 기계를 작동하다 실수를 했다고 한다. 회사 대표는 강씨에게 "'길 가다가 넘어졌다'고 하라"고 했다. "괜히 관청에 알려서 시끄럽게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김대영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구 감소와 복무 기간 축소로 병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영세 업체로 병력 자원을 보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제도를 없애는 것까지 포함해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