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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을 통한 업무 자동화, 이른바 RPA(Robot Process Automation)가 국내 기업들에도 확산되고 있다. RPA는 사람이 담당했던 업무를 컴퓨터에 깔아 둔 로봇 소프트웨어가 대신 수행하는 과정을 말한다. 고객을 대면하는 서비스 업무나, 전략이나 기획을 구성하는 고차원적인 업무가 아닌 단순하면서도 정형화된 반복 업무가 주로 로봇에게 맡겨진다.

RPA의 가장 큰 장점은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은 물론, 프로그래밍된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실수가 적다. 업무 대체로 생긴 여유 인력은 가치 판단과 분석 등 생산성이 높은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때문에 이미 전세계 많은 기업들은 RPA를 빠르게 도입하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가트너(Gartner)는 최근 "오는 2020년까지 전세계 기업의 파이낸스 관련 부서 4개 중 3개(73%)가 RPA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다수의 고객 관리로 단순·반복 업무가 많은 카드회사, 은행, 보험사 등 금융회사들이 RPA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대카드가 대표적이다. 현대카드는 이미 2017년 9월부터 21개의 부서의 44개 업무에 'RPA 프로젝트'를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해왔다. 이를 위해 사내에 '로봇룸'을 만들고 30여대의 로봇을 설치해 사람이 하던 업무를 대신하게 했다. 국내 기업 가운데 최대 규모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동안 직원 72명이 감당해 왔던 연간 1만 5628시간에 달하는 업무를 절감할 수 있었다. RPA를 경험한 직원들의 반응도 좋았다. 현대카드에서 데이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이진혁 씨는 "쿼리 실행과 엑셀 대사 등의 작업을 자동화해 적게는 30분, 많게는 1시간 이상의 업무절감 효과를 내고 있다"며 "로봇이 나의 일을 대신한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허탈한 마음도 들었지만, 막상 업무 속도가 빨라지고 오류가 크게 줄어들어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현대카드는 2017년부터 21개의 부서의 44개 업무에 ‘RPA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사진은 지난 23일 서울 현대카드 본사에서 열린 RPA 관련 세미나 모습.

현대카드는 올해 연말부터 3차 프로젝트를 진행해 RPA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23일에는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에서 지난 1~2차 프로젝트의 성과를 공유하고 향후 진행할 세 번째 프로젝트와 RPA 발전 방향 등에 대해 논의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문성훈 IT커뮤니케이션 팀장은 "23일 개최한 3차 RPA 프로젝트 설명회에 자신이 맡은 업무에 RPA 도입을 원하는 100여명의 임직원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며 "각 부서에서 110여개에 달하는 후보 업무를 접수 받았으며 순차적으로 RPA 시스템 도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RPA는 확산되는 분위기다. 일본의 대표 IT 기업 소프트뱅크의 경우 전 부서에 RPA를 도입해 한달 1만 500시간이 투입되는 업무를 절감했다. 글로벌 금융기업인 HSBC도2015년 전세계 3000여명이 해오던 업무를 RPA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RPA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는 것은 아직도 전세계 많은 기업들의 운영 시스템이 매우 후진적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른바 엑셀이나 회계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전사적 자원 관리) 프로그램 등을 이용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20세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미국의 경제 주간지 포브스에 따르면 기업 내 예산이나 비용 관리 등 파이낸스 관련 부서의 경우 전체 업무 시간의 80% 가까이를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정리하는 단순 업무에 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오직 20%의 시간을 데이터 분석이나 의사 결정 등 높은 수준의 업무에 겨우 쓰고 있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논란도 있다. 그러나 RPA가 단순히 양적인 인건비 절감 효과만 내는 것은 아니므로, 이는 섣부른 걱정이라는 연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영국 런던 정경대 레슬리 윌콕 교수는 "RPA를 도입한 첫 해에 투자한 비용 대비 최대 200%의 이익을 거둬들일 수 있을 것"이라며 "RPA를 통해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들을 자동화 하는 대신 사람들은 더 흥미로운 일들을 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