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간(獸奸)을 다룬 전자책(e-book)이 국내 최대서점인 교보문고에서 판매됐던 것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다. 교보문고는 문제가 불거지자 뒤늦게 판매를 중단했지만, 네티즌들은 "반윤리적이며 동물학대 혐의가 있는 책이 이렇게 버젓이 유통되는 게 놀랍다"는 반응이다.
문제의 책은 ‘페미니스트와 반려견의 안전한 성’이라는 전자책. 지난 8월 16일 교보문고, 구글북스 등에 등록됐다. 분류는 ‘자기계발서’로, 여성의 입장에서 애견과의 성행위 방법을 다룬다고 설명하고 있다. 출판사가 낸 책 설명문에는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반려견과의 사랑을 나누는 동안 산책과 간식이면 아이를 위해 충분하다며 애써 자위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오랜 시간 터부시되었던 반려견과의 깊은 스킨십에 대한 궁금증을 해부해 본다" 쓰여있다.
책의 판매 사실이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은 출간 2개월이 경과한 지난 27일부터다. 일부 내용이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며 논란이 됐다. 간행물윤리위원회 유해간행물 신고 게시판에는 지난 27일 이후 ‘페미니스트와 반려견의 안전한 성’ 관련 신고만 50여개가 올라온 상태다.
책을 유통한 교보문고에도 비판이 쏟아진다. 교보문고 홈페이지에는 "페미니스트와 애견인 모두를 욕보이게 하는 책이다. 당장 삭제해달라", "사회적 파장도 고려 안 하고 책을 출간하나" 같은 의견이 올라왔다.
현행법상 수간은 관련 규정이 없어 그 자체로 처벌받지 않는다. 최익구 법무법인 유스트 변호사는 "수간 행위 도중 동물에게 상해를 입혔다면 동물보호법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관련 조항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동물보호법 제8조에 따르면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 정체불명의 출판사·저자… 성별 대결로까지 불똥 튀어
불똥은 '성별 대결'로까지 튀고 있다. 책 제목에서 '페미니스트'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내용은 페미니즘과 전혀 관계없는 '수간 안내서'에 가깝다는 것이 독자들의 평이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수간까지 하느냐", "페미니스트를 욕 먹이기 위해 남성이 쓴 것이다"는 주장이 대립하며 갈등이 커지고 있다.
책의 출판사 ‘모두코’는 2017년 4월 사업자등록을 한 전자책 전문 출판사다. 지금까지 전자책 ‘마초수업’ ‘페미니스트의 3분 행복법’ 등 25종을 교보문고·리디북스·반디앤루니스·인터파크·예스24등지에서 판매해왔다.
신원 불명의 저자 ‘아리나’는 이 출판사에서 ‘좀 놀아본 언니의 키스 교실’, ‘그 여자의 사생활 매뉴얼’, ‘페미니스트의 3분 행복법’ 등의 책을 내왔다. 네티즌들은 "대표가 1인 출판사를 차려, 여러 필명으로 자극적인 책을 내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출판사의 해명을 듣기 위해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 '표현의 자유' 출판 자체 막을 길 없어… 사후 심의만 가능
현행법상 이런 내용을 다룬 서적의 출판 자체를 막을 방법은 없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21조에 따라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출판물의 유해성에 대해선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사후 심사를 통해 '유해간행물'로 지정해 수거·폐기할 수 있다.
출판산업문화진흥법 19조(간행물의 유해성 심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면 부정하거나 체제 전복 활동을 고무(鼓舞) 선동해 국가 안전과 공공질서를 뚜렷이 해치는 것’, ‘음란한 내용을 노골적으로 묘사해 건전한 성도덕을 뚜렷이 해치는 것’, ‘살인·폭력·전쟁·마약 등 반사회적 또는 반인륜적 행위를 과도하게 묘사·조장해 인간의 존엄성과 건전한 사회질서를 뚜렷이 해치는 것’의 내용을 담은 출판물을 심의를 거쳐 유해간행물로 지정한다.
문제가 된 책은 성도덕·인간존엄성을 해치는 측면에서 유해간행물 지정 심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논란이 불거진 후 교보문고에서는 판매가 중단된 상태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판매 경위 등에 관해 자세한 정황을 파악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