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이 공개된 PC방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성수. 신상공개의 범위는 얼굴, 나이 등 제한적이다.

아무리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해도, 범인 얼굴이 공개되지 않는 시점이 있었다. 2010년 4월 이전의 사건에서는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 할지라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없었다. 나영이를 성폭행한 조두순, 연쇄살인범 강호순 역시 신상(얼굴)이 공개되지 않았다.

80, 90년대에는 주요한 형사 사건의 용의자의 경우, 얼굴과 나이는 물론 집주소까지 다 언론에 공개됐다. 화재 사건의 피해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관행은 부작용도 낳았다. 피의자 인권이 과도하게 침해된 것이다. 일반적 관행에 제동이 걸린 것은 노무현 정부시절이었던 2003년 '인권보호 수사준칙'이 생기면서부터다. 이 법은 언론의 형사사건 피의자 신상공개를 사실상 금지하는 것이었다.
이 규정도 논란이 일었다. 사건가해자의 인권만 과도하게 보호된다는 국민 여론이 일어난 것이다.

이명박 정부시절인 2010년 4월 15일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가 공포됐다. 법안 구체적 내용은 ①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일 것 ②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③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것 ④피의자가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모든 요건을 갖춘 경우에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피의자의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근거로, 지난 8월 손님과 말다툼을 벌이다가 흉기로 살해한 뒤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 근처에 유기한 변경석(34), 재가한 어머니 일가족을 살해 후 뉴질랜드로 도피했다가 올해 1월 국내에 송환된 김성관(35), 2017년 여중생 딸을 납치·살해한 후 유기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36), 골프연습장 주차장에서 40대 주부를 납치·살해한 심천우(32), 경찰이 2016년 경기 안산 대부도 토막살인 사건 피의자 조성호(30), 2012년 수원 토막 살인사건 피의자 오원춘(47)도 이름과 얼굴이 공개됐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용의자 김성수(29)의 신상이 알려졌다.

외국은 우리보다 더 폭넓게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주요 언론을 통해 강력범죄를 범한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일본도 강력범죄 피의자의 얼굴과 전면적인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만 범죄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신상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성수 얼굴이 공개되자 비교적 ‘진보적’ 입장에 선 이들이 신상공개에 과하다고 지적을 하고 있다. ①피의자의 초상권과 프라이버시권 등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다 ② 무죄추정원칙 등에 반한다 ③피의자의 가족들에게 피해를 발생시켜서 형벌의 자기책임의 원칙에 반하고 연좌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기본권 등을 침해하는 경우가 발생했을 때, 그 정당성을 판단하는 잣대는 바로 ‘비례성의 원칙’ 이다. 어떤 법이 입법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법익 균형성, 피해최소성을 갖추고 있다면 그 법은 헌법에 합치한다고 보는 것이다. .

먼저 입법의 목적. 신상공개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이라는 공익적 목적으로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증거관계가 명백한 경우에 한해 신상공개를 하고 있기에 무죄추정 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인정하는 미국, 영국, 일본의 경우에도 ‘국민의 알권리’ 등 공익적 목적에 따라 피의자 얼굴을 공개하고 있다.

두번째, 신상공개 방법의 적정성. 현행법은 모든 범죄에 대해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특정강력범죄사건에 한해 공개를 인정한다. 또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피의자가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모든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신원공개를 하고 있다. 범위도 얼굴, 성명, 나이에 국한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방법의 적정성도 인정된다.

세번째, 법익의 균형성. ‘공인’에게는 ‘프라이버시권’이 축소될 수 밖에 없다. 적법행위를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법을 선택한 범인은 ‘사인’에서 ‘공인’으로 지위가 변경된다고 봐야 한다. 미 연방대법원도 ‘범인’은 ‘공인’(Public Figure)으로 보고 있다.

프라이버시권의 일부인 얼굴 공개는 ‘공인’은 감수해야 하는 사안이고, 국민의 알권리는 ‘공인’에 대해서는 더욱 강화된다. 얼굴 공개는 국민의 알권리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공익성이 더 높다고 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피해의 최소성. 현재 우리 체계는 성명, 나이, 얼굴을 공개하는데, 청소년의 경우에는 ‘교육형주의’에 따라 얼굴 공개 대상에서 예외로 규정된다. 성인의 경우애도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이 명확하다. 피해의 최소성도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가족과 혈연관계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신원공개로 인하여 피의자 가족에 대한 2차 피해의 우려가 있다는 점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2차 피해를 고려하면 사실상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신원공개를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신원공개로 인한 2차 피해는 또 다른 사회안전망을 통해 보호하는 것이 타당하다.

결론적으로 현재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의 규정은 합당한 입법이다. 필자는 오히려 ‘공개할 수 있다’는 재량 규정을 ‘공개하여야 한다’는 의무규정으로 변경하는 쪽이 옳다고 본다. 대신 신원공개를 하면 안 되는 특단의 사유가 있는 경우, 피의자측이 이를 입증해 공개하지 않는 쪽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